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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수

“왜 화이자 백신을 미리 사놓지 않았느냐”고 비판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비판을 모두 여야 정쟁의 틀에서 해석하면서 “문재인 탓”으로 돌리는 것도 매우 쉬운 일이다.

하지만 세상 일은 간단치가 않다.

자기가 임명한 검찰총장과 싸우고 있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 방역은 정부 인사들이 완전히 맘대로 주무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안이하다. 더구나 방역은 전문지식의 영역인 걸.

그래서 비판의 포인트가 더 뾰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뾰족하지 않은 비판은 대통령만 갈아치울 뿐이고, 실제로는 바뀌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을 반복하게 할 것이다.

비판이 “그들의 무능/그들의 무뇌”에 국한 되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설사 문재인이 너무 혐오스럽더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진짜 문제 해결 방법이다.

최근 백신 확보 이슈에서, 정부의 난데없는 셀트리온뽕도 문제지만,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결정을 했다는 점이다.

왜 우리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를 선택했는가?

왜 다른 나라 정부들도 아스트라제네카를 가장 많이 선택했는가?

정부가 정책결정을 할 당시는 백신 개발이 아직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고 화이자 백신이 이렇게 빨리 접종될 줄 전혀 몰랐던 시점이라는 걸 상기해야 한다. 그래야 Hindsight Bias를 방지할 수 있다.

첫번째 이유는 가격이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가격은 화이자의 1/4, 모더나의 1/10 수준에 그친다. 만약 모더나 백신을 왕창 사놨는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먼저 임상을 통과하여 접종을 끝내게 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번째 이유는 백신 유형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이미 많이 해본 바이러스 벡터 기반 백신이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은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는 이야길 들었던 mRNA 백신이다.

과학기술에서 ‘이론’과 ‘실험’ 사이의 거리, 그리고 ‘실험’과 ‘양산’ 사이의 거리는 때때로 수십년에 해당하기도 한다. mRNA 백신은 신기술인 만큼 개발이 되더라도 임상 통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넉넉하게 백신을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이 아스트라제네카였던 것이고, 화이자와 모더나의 mRNA 백신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급박한 사태가 아니었다면 아마 임상 통과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코로나라는 비상한 상황이 신기술의 화려한 입장을 도운 셈이다.

세번째 이유는 국내 위탁생산 가능성이다.

mRNA백신은 국내 위탁생산이 어려우므로 공급을 온전히 해외에 의존해야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는 국내생산이 가능하므로 공급이 원활하다.

산업정책의 측면에서도 신산업인 바이오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 모든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단연 “예산 확보” 및 “과잉 확보 시 책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었다면 일단 여기저기 백신을 계약해놓고 보자는 태도로 임했을 것이고, 방역당국의 관료조직도 정무직 공무원들에게 그런 정책방향으로 조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신종플루 때는 백신을 미리 많이 사둔 채로 팬데믹이 종식되는 바람에 공무원들이 국감에서 호통 듣고 줄줄이 징계를 받았다.

우리가 정말로 비판해야 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정부여당은 180석이나 갖고도 제도적 개선을 미리 생각하지 못한 점을, 방역당국은 백신 확보와 관련한 제도적 보완을 미리 건의하지 못한 점을 비판 받아야 하는 것이고, 아스트라제네카를 선택한 것 자체는 비판할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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