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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won Jin

14시간 

[1503 겨울 Conclave]

Conclave는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의 모임을 의미하는데, 1503년에는 교황령을 넓히고, 교황의 권위 강화에 힘쓴 알렉산더 6세와 그 후계자인 파이어스 3세의 연달은 급사로 2차례 개최됐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나폴리,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 4개의 강력한 도시 공국과 소규모 도시국가가 함께 있었고, 봉건국가를 설립한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수시로 위협받는 상황이어서 수시로 합종연횡이 벌어지는 어지러운 상황이었던 데다가 알렉산더 6세의 아들인 체사레 보르지아가 교황령을 넓히기 위해 교황군을 동원하여 벌인 정복 전쟁으로 인해 10년 이상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보르지아 가문이 지지하는 파이어스 3세가, 교황으로 선출된지 한 달만인 10월 중순 사망하자 11월에 다시 콘클라베가 개최됐습니다.

교황 후보자인 줄리아노 델라 로베르(교황명 줄리어스 2세)는 당시 교황군을 이끌던 사령관인 체사레에게 "내가 당선되면 당신의 모든 권위와 권한과 영역을 그대로 유지하게 해 주겠다"고 말함으로써, 콘클라베가 개최되는 동안 교황군을 로마에서 철수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평소같았으면 절대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판단했을 체사레는 몇 달 전 심한 병을 앓다가 갓 깨어난 참이어서 그 말을 그대로 믿어 교황군을 로마 교외로 철수시킨 후, 로마에 홀로 남아있다가 교황으로 당선된 줄리어스 2세에 의해 체포되어 스페인으로 추방당하는 상황이 됐고, 4년 뒤 심야에 일말의 병졸들에 의해 칼로 난자당해 사망합니다.

오늘 어떤 회의가 개최되었다는 소식이 있는데, 기일 연기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심야에 결론이 나온다고 합니다.

심야라는 어휘가 의미심장합니다.

첨부 사진은 오스트리아의 역사화가 Hans Makart의 Conclav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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