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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대통령이 바둑을 둡니다.

생각시간 닷새 바둑입니다.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표정도 바뀌지 않습니다. 열아홉 줄 바둑판에 시선을 꼿꼿이 고정한 채 뚜벅뚜벅 정수를 둡니다. 묘수를 두려 하지 않습니다. 신수를 두려 하지 않습니다. 사흘이 지나고 나흘로 접어듭니다. 대국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답답해합니다. 조급해합니다. 곧 초읽기가 시작된다며 저마다 훈수를 합니다. 급소를 찌르라고 합니다. 판을 흔들라고 합니다. 대마사냥에 나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착점은 다시 정수입니다. 대국을 중계하는 해설자가 승부사 기질 운운하며 독설을 뿜습니다. 그의 패배를 단언합니다. 그를 응원하던 몇몇은 한숨 쉬며 자리를 뜹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정수. 여전히 뚜벅뚜벅.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불계로 이기겠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닷새가 흐릅니다. 그가 바둑판 위에 마지막 돌을 올려놓습니다. 두 대국자는 잡은 돌로 상대 집을 메워갑니다. 눈터지는 계가. 모두가 긴장. 이깁니다. 그가 이깁니다. 그가 반 집 이깁니다. 그는 이미 승부를 알고 있었다는 듯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대국장 밖으로 몇 걸음 걷던 그가 풀썩 쓰러집니다. 하늘의 태양이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놀란 사람들은 그를 바르게 눕히고 가슴을 풀어헤칩니다. 까맣습니다. 새까맣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새까맣게 태우며 이 한 판을 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렵고 외롭고 고독한 승부를 건성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손에 땀이라도 쥐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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