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박순철 남부지검장이 사퇴했단다. 추미애 장관이 전임 송삼현 지검장의 문제를 바로잡고자 앉힌 사람인데, 단기적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판국에서 윤석열은 그가 했다는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자기 변호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박순철의 사퇴의 변 전문을 보면 검찰청장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지휘에 대한 불만을 내비친 부분이 있고, 언론들 다수가 이 부분만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정작 더 중요한 부분이 따로 있다. 바로 다음 단락을 한번 보시라.
"2005년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 시 당시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고 사퇴하셨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평검사인 저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그때와 상황은 똑같지는 않지만 이제 검사장으로서 그 당시 저의 말을 실천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박순철은 2005년 수사지휘권 행사시 검찰청장이 사퇴했던 일을 거론하면서 당시 자신도 그 사퇴를 지지했었다고 말한다. 그런 취지에서 자신도 사퇴한다는 것인데. 그런데 문맥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이 검찰청장도 아닌데 말이다.
이쯤 되면 많이들 눈치 채셨겠지만, 전후 문맥상 박순철의 이 말은 사실 자신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바로 앞에서 장관의 지휘권행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서술하지 않았는가. 그 바로 다음 단락에서 지휘권행사 이후 '검찰청장 사퇴 전례'를 정면으로 거론한 것이다. 쐐기를 박아버리듯이.
이것은, 명백하게 '윤석열도 함께 물러나야 한다'는 뜻의, 우회적이지만 강렬한 의사 표현이다. 박순철이 자신도 제물로 하면서까지 윤석열에게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고 고언한 셈이다. 내가 눈치챘을 정도면 눈치 빠른 검사들은 대부분 역시 눈치챘을 것이다.
2005년 노무현정부 시절의 수사지휘권 행사 이후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사실상 현정부의 '검찰청장 불신임'의 의미로 받아들여져왔다. 고집을 피우다가 수사지휘권이라는 불명예까지 뒤집어썼으면, 당연히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물론, 윤석열이 괜히 윤석열인가. 박순철의 진의 따위는 모르쇠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인용하는 것 보라. 동서고금 유사이래 전례가 없는 철면피다.
이미 승기를 잡은 우리로서도, 이쯤 되면 윤석열이 쉽게 물러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현직에서 구속영장 발부되고 수갑 차라. 그것만이 윤석열에 대한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