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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요훈기자

거짓말 경연대회가 열린다면...

내가 아는 현존하는 최고의 거짓말쟁이는 이명박이다. 단지 거짓말을 많이 해서 거짓말쟁이라는 게 아니다. 숨 쉬는 거 빼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다 거짓말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부화뇌동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내 눈에 이명박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사고능력이 제거된 인간으로 보인다. 참과 거짓이 뒤바뀐 정신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피부가 너무도 두꺼워 거짓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소시오패스로 보인다. 임기 내내 의혹이 끊이지 않았는데 역대 어느 정권보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자화자찬을 했었다.

이명박의 거짓말은 보통 사람들의 거짓말과 차원이 다르다. 돈에 대한 집착은 가히 우주 최강인데, 그는 간디를 존경한다 하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감명깊게 읽었다고 한다. 민주주의를 20년, 30년 전으로 후퇴시킨 그의 애창곡은 ‘아침 이슬’이라 하고, 광우병 파동 당시 청와대 뒷산에 올라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촛불을 내려다보며 아침이슬을 마음으로 따라 불렀다고 했었다.

이명박의 가훈은 ‘정직’이라고 한다. 정직의 미덕을 어머니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이명박은 어머니께서 늘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고 했었다. 그 말은 사실일까? 잘 아다시피, 그의 두 형은 부정한 돈과 섞여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이상득과 이상은이다. 이명박의 ‘정직’은 국어사전에 나오는 ‘정직’이 아닌가보다.

이름만으로도 짜증이 솟는 이명박을 불러낸 건 순전히 조선일보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신입기자들을 뽑는 공고를 냈는데, 그 내용이 가히 이명박을 능가하는 ‘사이코패스’를 연상하게 한다.

거짓 뉴스를 만드는 일부 매체와 소셜미디어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단다. 그게 조선일보다. 선동과 위협에 흔들리지 않는 저널리즘 정신으로 가짜와 선동에 맞서 나갈 거란다. 조선일보가 조선일보와 싸우겠다는 말로 들린다. 저널리즘을 빙자하여 비판이 아닌 비방의 선동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회를 흔드는 ‘일부 매체’의 선두에 조선일보가 있지 않은가.

지금은 스마트 시대다. 조선일보와 그 아류 매체들이 언론시장을 독점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던 시대가 아니다. 사람들은 종이가 아닌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모니터 화면으로 뉴스를 소비한다. 상품 진열대에서 여러 제품을 비교하고 선택하듯이 뉴스도 그렇게 선택하고 소비한다. 스마트시대의 모니터 화면에는 조중동과 그 아류들만 있는 게 아니다. 그뿐인가. SNS에는 기자들을 능가하는 초절정 무림고수들이 언론을 감시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수습기자 공고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조선일보에는 이제 좋은 시절은 갔다는 한탄과 상실감과 적대감의 악다구니만 남았구나. 그런데 이거 사기성 광고 아닌가? 이런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합격한 어린 기자들이 ‘이런 사람을 구합니다’ 모집공고에 나온 대로 기사를 쓸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랬다간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할 거고…

 

 

“이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 마지막 한 명만 살아남고 다 죽는 것이다.”

영화 <1917>을 봤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죠. 영화 <1917>이 마지막저는 영웅이 나오는 전쟁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쟁의 진짜 얼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첫 부분에 나오는 해안상륙 장면에서 몸통이 끊긴 병사의 사체, 팔을 잃고 넋이 나간 병사의 표정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투를 눈 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너무도 생생하고 끔찍하여 한동안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어야 전쟁이 끝난다는 영화 속 대사는 몰살이 예고된 전투를 지휘하는 연대장이 한 말입니다. 전쟁의 속성,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그 대사에 함축되어 있는 것 같네요.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적을 죽여야 내가 삽니다. 포연이 시야를 가리고 공포에 눈이 멀면 누가 아군이고 적군이지 분간이 되질 않다고 합니다. 총탄에는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총탄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직진으로 날아가며 사정거리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입니다. 포탄이 떨어지면 빌딩이든 아파트든 가리지 않고 사방의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영화 <1917>을 용감무쌍하여 전쟁을 선동하는 이들에게 권합니다. 특히 미필 하태경 의원, 북진통일을 준비하자던 똥별 출신 신원식 의원, 북에서 도망온 태영호 의원에게 권합니다. 그러고보니 다 같은 정당이군요. 나는 그 정당의 이름이 '국민의 짐'이 아닌 '국민의힘'이라는 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전쟁이 벌어져도 나는 죽지 않고 누군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고, 내가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될 거라는, 삼류 영화 같은 환상을 갖고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정신 좀 차리기를...

북에서 온 태영호씨에겐 이런 질문을 하고 싶군요. 당신이 한반도의 평화를 방해하고 전쟁을 선동하는 발언을 하는 이유는 뭐요? 당신 지역구의 부자 주민들이 그러라고 하던가? 전쟁이 나도 그들은 무사할 거라고 하던가?

 

 

‘7시간’ 콤플렉스

그네들에겐 ‘7시간’ 콤플렉스가 있는 게 분명하다.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일 때, 국민에겐 어떤 불행과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그 ‘7시간’의 콤플렉스.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침몰하는 여객선에 갇혀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던 시간에 대통령 박근혜는 콘트롤타워를 비운 채 사실상 '7시간'이나 실종 상태였었다.

그네들은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되고 정권을 회수 당한 것도 결국은 그 ‘7시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백 명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그 ‘7시간’에 대통령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끈질기게 물었던 것도 진상 규명의 목적이 아닌 정치 공세일뿐이라고 치부한다.

그들도 안다. 대통령 박근혜는 국가 운영의 자질이라곤 없는 깡통공주였다는 걸.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의 ‘7시간’은 박근혜를 앞세워 권력을 차지한 집단의 무능과 무책임과 부도덕과 몰양심과 공감능력 부재의 총합이라는 걸. 그래서 그네들은 ‘7시간’의 비밀을 캄캄한 지하에 봉인하였다.

콤플렉스는 정직한 고백과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그네들은 고백도 성찰도 하지 않았다. 선거철이 되면 ‘잘못했습니다’ 사죄쇼도 하고, ‘한 번만 더 도와줍쇼’ 각설이쇼도 하고, 가게 간판도 바꿔 달면서 새 사람이 된 것처럼 위장을 하는 국민 기망으로 일관하였을 뿐이다.

그뿐인가. 흙탕물 튀기기와 물귀신 작전도 그네들이 즐겨 쓰는 콤플렉스 탈출법이다. 전후사정은 생략한 채 산불이 났는데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느냐, 우리 국민이 피격을 당했는데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느냐, 박근혜의 ‘7시간’과 다른 게 뭐냐, 그보다 더하지 않느냐 하면서 트집 잡고 억지를 부리면서 같이 나쁜 사람이 되자고 우기며 떼를 쓴다.

참 우습다. 그들은 흙탕물 튀기기라 하겠지만 결국은 제 얼굴에 침 뱉기요, 물귀신 작전이 아니라 제 발등 찍기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비극의 그 날로 잠시 돌아가 보자. 아이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절체절명의 시간에 대통령이 실종상태였다는 걸 국민에게 알린 건 언론이 아니라 박근혜 자신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중앙대책본부에 나타난 깡통공주의 입에선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구명조끼를 다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그 말을 들은 나는 경악했었다. 내 귀에 그 말은 ‘환관들이 가보라 해서 왔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난 아무 것도 몰라요’라는 것과 동의어로 들렸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얼굴은 피곤에 쩔어보였는데, 그 또한 노심초사하며 구조상황을 지휘하고 있었던 것처럼 연출하기 위한 위장이었다는 것이 나중에야 드러났다.

생방송으로 중계된 박근혜의 그 말은 '나는 깡통공주입니다'라는 고백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비서실장 김기춘은 국회에서 사실상 이런 의미의 답변을 하였다.

우리는 공주님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궁궐 어딘엔가 있겠지요. 공주님이 어디에 있는지 우린 관심이 없어요. 어짜피 공주님이 콘트롤타워는 아니니까요.

그네들은 여전히 ‘7시간’의 비밀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 ‘7시간’은 무능과 무책임과 몰양심과 공감능력 부재의 총합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7시간’의 비밀이 드러나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공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그런 공포가 콤플렉스로 작동하고 있고, 그래서 너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억지의 동일시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게 아닐까.

이 참에 봉인된 ‘7시간’의 비밀상자를 개봉하기 바란다. 그 ‘7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같은 7시간인지 아닌지 비교할 수 있지 않겠는가. 툭하면 대통령의 일거부일투족을 분초 단위로 밝히라는 억지가 지긋지긋하여 하는 말이다. 국민인 나는 그네들의 짜증유발 정치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철수는 아무 데나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일에 자꾸 초딩이 나서면 버릇없는 아이라고 야단만 맞는다.

추가. 컴플렉스는 힘이 아니라 짐이다. 한국의 보수정치집단에는 컴플렉스가 여럿 있는데, 맨 앞자리에 친일의 뿌리가 있고, 가장 최근에는 세월호 7시간과 최순실 국정농단이 있다. 이름만 바꾼다고 국민의 짐이 국민의 힘이 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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