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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들어가지 않은 소통은 없다. 이제 블로그를 시작한지가 몇달만 지나면 2년이 됩니다. 우리가 말은 소통을 주장하면서, 철저하게 마음을 닫은 사람들이 소통이라는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상품을 판배하는 공간에 서 있습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사회와 가정이 철저하게 폐쇠 되었던 사람들이 나눔의 공간을 주어줘도, 결국 막혀진 상태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불통속에 나눈다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나눔과 소통이 되려면, 마음과 마음의 대화가 아니면 오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장하고 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닙니다. 지식을 판매하는 것이 마음까지 소통의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블로그를 하면서 더 많이 각박하고 아픔만을 목도 합니다. 게중에 몇몇은 나눔도 있지만, 쓸쓸한 바람만 보고 갑니다. 글이 좋아 글을 씁니다. 소통이 필요한 .. 더보기
자녀와 나눠야 한다. 우리의 자녀는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자신을 반겨줄 사람이 없습니다. 자녀들은 혼자가 된것입니다. 우리가 성장할때 여유스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책보를 어깨에 메고 정신없이 집에 오면, 들판에 나가 일하시는 부모님을 보았습니다. 이 동네 저 동네 일손이 바쁜 와중에도 우리와 같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있어도 자녀와 나누는 시간이 적어지고 있습니다. 부모도 조부모도 이젠 정으로 맺어져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가 봅니다. 모두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을 연습하는지 모릅니다. 어린 자녀를 따로 그렇게 키우듯, 우리도 노인이 되어 따로 잊혀진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잊습니다. 우리네 삶이 자녀와 나눔이 없이 성인이 되었을때, 세상만 있으면 나눔이 되는중 알고 생각.. 더보기
작은 아버지를 생각 하면서.... 아버지 연배에 살아 계시는 분은 작은 아버지 밖에 없습니다. 이제 숙부님도 구순이 내일 모래 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의 성상 앞에, 당신의 몸과 마음은 모두가 너덜이 나고 있습니다. 숙부님은 오랜동안을 숙모님의 병수발을 하였습니다. 10여년이 넘게 수발 하다가 수년전에 이별의 잔을 들어야 하였습니다. 지금도 작은 아버님은 혼자 사시고 있습니다. 시골에는 형님 내외분과 사촌이 일주일을 사이에 두고 방문 합니다. 생로병사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숙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산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적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 삶이 영원할것 같아도 세월의 무상 앞에 초라해 집니다. 우리도 숙부와 같이 늙고 병들고 혼자 외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산다는 것은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