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페이스북

윤성학

2020년 한러관계 결산과 새로운 전략

2020년은 1990년 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은 북방외교를 통해 소련, 동유럽, 중국 나아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경제적으로는 1990년 9억 달러에 못 미쳤던 교역액이 2019년 223억 달러로 급증했다. 한국의 대러 투자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롯데호텔 등 대기업이 러시아 현지 투자를 주도했다.

한국과 러시아는 2020년을 ‘한러 상호교류의 해’로 선포하고, 각종 행사를 기획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행사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바뀌게 되었다. 양국 간의 무비자정책도 잠시 중단되고 항공 노선들도 폐쇄되는 일이 발생되었다. 한국도 코로나 사태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러시아는 더 심각하다.

코로나 때문에 한러관계 30주년이 퇴색된 느낌이다. 그렇지만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한러관계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한때 중국을 능가했던 러시아 경제가 폭망하면서 한러 경제관계는 간신히 10대 교역국에 명함을 내밀 수준으로 폭락했다. 한국이 사할린 2에서 수입하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빼면 20대 교역국으로 추락할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창한 9개의 다리는 여전히 공약 상태이다. 물론 여기에는 서방의 대러 제재, 북한의 핵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지만 북방경제협력위원회라는 정부 조직을 구성하고도 제대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바이든 시대에 한러관계는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 러시아 제재는 러시아 내 인권과 민주화 문제, 러시아의 미국 선거 개입 의혹, 신재생 에너지 중심의 미국의 에너지 정책 등으로 충돌과 갈등이 높을 것이다. 여기에다 푸틴이 중국을 노골적으로 지지한다면 신냉전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철도 연결 등 한러 간에 거대 프로젝트 추진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한러관계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씩 개선되는 분야도 보인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연해주 지역의 한국 농업투자가 궤도를 찾아가고 있다. 롯데상사와 팜스토리는 대두, 옥수수, 귀리를 생산하여 가능성을 보였다. 한국과 가까운 러시아 극동의 지리적인 조건이나 한국의 우수한 영농기술력을 고려한다면 대러 농업, 어업 투자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20억 달러 규모의 투융자 플랫폼을 만들었지만 지금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이 돈은 한국 측에서는 한국수출입은행이 관리하고 있는데 서방의 대러 제제 때문에 예산 사용에 아주 신중하다. 수출입은행이 걱정하는 것은 혹시 러시아 제재 기업이나 인물에 그 돈이 들어가면 서방으로부터 secondary sanction을 맞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출입은행 자금이란 중소기업이 받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까다롭다. 이 예산을 독립 법인에게 넘기고 설령 제재를 받더라도 다른 한국의 기업에 피해가 없도록 하는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다.

한러관계의 객관적 지표는 좋지 않지만 민간 차원에서 협력과 교류는 심화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갈수록 좋아지는 것도 고무적이다. 2019년 세계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가장 좋게 평가하는 나라는 러시아로 조사되었다. 16개국 8000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국가 이미지’를 조사했는데, 러시아에서는 한국에 대해 “긍정” 평가한다는 응답이 무려 94.8%이다. 지금 김해, 인천 등에는 고려인과 러시아인이 넘쳐난다.

러시아 제국, 푸틴의 나라는 지금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다. 군사력을 내새워 강한 척을 하지만 모든 제국의 말기가 이랬다. 러시아는 GDP에서 한국에 뒤처지고(한국 10위, 러시아 11위) K-팝을 앞세운 국가 매력도에서도 한국은 러시아를 압도한다. 이런 시기가 러시아 진출의 청신호이다. 극동과 시베리아는 한국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러시아의 학자 블라디미르 수린은 자신의 ‘한러 공생국가’에서 시베리아 개발은 한민족과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정말 그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

 

다가오는 러시아의 거대한 변화의 시작, 나발니의 귀환

차르 푸틴에게 폭탄이 떨어졌다. 그의 최대 정적이자 내일 당장 대통령 선거를 한다면 당선이 가장 유력한 나발니가 1월 17일 저녁 러시아에 돌아온 것이다. 2021년 러시아에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대통령 선거라면 다행이지만 자칫하면 혁명이 발생할 수 있다. 본래 러시아에서는 겨울에 혁명이 발생한다. 1905년 1월 혁명, 1917년 2월 혁명도 겨울에 일어났다.

나발니의 러시아로의 귀환은 1917년 4월 레닌이 망명지인 스위스에서 봉인열차를 타고 독일을 거쳐 페트로그라드로 귀국한 것과 흡사하다. 차르 타도 후 구성된 케렌스키 임시정부는 레닌의 귀국을 원치 않았지만 레닌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독일의 협조를 받아 스웨덴과 핀란드를 거쳐 조국 땅을 밟았다.

4월 16일 밤 11시에 레닌이 탄 열차는 페트로그라드의 핀란드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늦은 시각에도 레닌의 지지자인 볼셰비키 당원, 군인, 노동자, 군중들로 가득 차 있었다. 레닌이 열차에서 내리자 그들은 ‘레닌, 레닌!’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마침내 혁명의 지도자가 수십년 만에 조국 러시아에 도착한 것이다. 군악대가 ‘라 마르세예즈’를 연주하고 ‘인터내셔널’ 노래가 터져나왔다. 역 앞 장갑차에 올라탄 레닌은 “약탈적인 제국주의 전쟁은 전 유럽 내전의 시작이다. 전 세계적인 사회주의 혁명 만세!”라고 외치자 수천 명의 군중들이 열광적으로 따라 외쳤다. 이것이 10월 혁명의 시작이었다.

베를린에서 출발한 나발니가 탄 비행기는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번에도 독일의 도움을 받았다. 브누코보 공항에는 영하 20도에도 불구하고 나발니의 지지자들이 수백 명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은 속속 모여드는 나발니 지지자들을 저지하기 위해 브누코프 공항에 진입하는 도로를 봉쇄했다. 공항에는 수백 명의 경찰이 ‘알렉세이’를 외치는 시위대에게 곤봉 세례를 가했다. 그럼에도 시위대의 열기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크레믈린은 비상상황임을 직감하고 도착 직전에 브누코보에서 세례메티예보 공항으로 바꾸었다. 나발니는 비행기 안에서 같이 타고온 승객들에게 사과를 구했다. “이 항공편의 승객들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브누코보가 폐쇄되었고 브누코보로 가는 도로도 막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오도가도 못하고 있습니다.”

세례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한 나발니는 즉각 체포되었다. 나발니가 이전에 유예된 징역형 조건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러시아연방 형집행국 경찰들은 이미그레이션에서 나발니를 수갑에 채우고 끌고갔다. 수갑을 찬 나발니는 힘겹게 공항에 도착한 수십 명의 지지자들을 향해 고맙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나발니는 공항 근처의 힘키 2번 경찰서에서 일요일 밤을 보냈다. 경찰은 나발니 변호사와의 접촉을 거부했다. 몇 명의 지지자들은 혹한의 겨울에도 경찰서 철조망 울타리 밖에서 “자유!”, “알렉세이를 석방하라!”고 외쳤다.

다음날 경찰서로 출장나온 판사가 재판에서 나발니에게 정식 재판 전까지 30일 구속 처분을 내렸다. 변호인은 이같은 출장 재판이 불법적인 조치라고 주장하며 항소하겠다고 했지만 판결이 번복되기는 힘들다. 나발니는 2월 2일 법원에서 열린 집행유예 파기 관련 소송에서 석방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구속 혹은 장기간 가택 연금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차기 러시아 대통령 선거일인 2024 년 7월까지 감옥에 남아있을 수 있다.

나발니를 구속을 시키든 가택연금을 하는 것은 푸틴 마음대로이지만 후 폭풍이 만만치 않다. 이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그에는 반푸틴 시위가 열리고 있다. 월요일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는 경찰에 의해 13명의 시위대가 구금되었고 최소 55명의 시위대가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시위는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유럽과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나발니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으며 미국에서는 퇴임하는 행정부와 차기 행정부 모두 나발니의 구속을 비난했다. 푸틴은 이런 국제적 비난을 그냥 뭉갤 수는 없다. 나발니 사태는 러시아가 목매고 있는 Nord Stream 2 가스관 사업의 중단을 의미한다. 작년 –3.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러시아는 가스 판매 확대에 국가적 명운이 달려 있다. 유럽으로 가는 Nord Stream 2 가스관의 공정률은 95%인데 마지막 덴마크 구간이 나날니 때문에 막혀 있는 것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자도 나발니 사태가 오래갈 경우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해보다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에 중심을 둔 외교정책을 추진한다. 미국이 노리고 있는 것은 푸틴의 개인 회사로 추정되는 노바텍에 대한 제재를 본격화하는 것이다. 노바텍은 야말과 북극해 LNG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데 가스프롬 다음으로 순익이 더 많은 알짜 회사이다.

국제적 제재와 별개로 러시아의 민심은 나발니로 넘어갔다. 푸틴이 사주한 독극물 테러 실패는 나발니의 위상을 푸틴 못지않게 올려놓았다. 나발니는 죽음 가운데 극적으로 살아났는데 이것은 러시아 연대기에 등장하는 영웅의 출현을 의미한다.

살인과 구속의 위협에도 러시아로 귀환한 나발니에게는 레닌과 같은 승부사적 기질을 볼 수 있다. 푸틴이 시간을 끌수 있을지는 몰라도 차기 러시아 권력은 이미 나발니에게로 넘어간 것과 마찬가지이다. 부패와 권력 남용, 시대에 뒤쳐진 석유가스 중심의 성장 전략으로 러시아인들은 푸틴에게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물론 푸틴이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죽이듯 도끼로 나발니를 해칠 수 있다. 그럴 경우 러시아에서는 피흘리는 혁명이 불가피하다. 혁명이란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충구  (0) 2021.01.22
정현주  (0) 2021.01.21
Kim Jeongho  (0) 2021.01.21
정재훈교수  (0) 2021.01.21
하승수  (0) 2021.01.21
임예인  (0) 2021.01.21
김범  (0) 2021.01.21
백승구  (0) 2021.01.20
라경춘  (0) 2021.01.19
최솔빛  (0) 2021.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