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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태

법원 판결은 도대체 왜 이럴까

1. 정경심 교수 판결을 두고 뭐라고 할지 눈에 선해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놈의 페북질이 웬수다.

2. 법원과 검찰이 한통속이라는 비난도 있고 정치적 판결을 했다는 의견도 있고 좌표 찍고 재판부 공격하는 이들도 있다.

법원생활 조금 해 본 입장에서 보자면, 판사들은 절대 자신들이 검찰과 한통속이라고 생각 안한다. 이런 말하면 정말 기분 나빠할 판사들 많다. 정경심 재판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판사들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생각 안 한다. 판사 개인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진보 보수를 떠나 대부분의 판사들이 같은 입장일 것이다.

3. 그러나 슬프게도 국민이 아니라 판사들이 틀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판사들 생각대로 검찰과 한통속인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형사재판을 해 보면 법원이 정말 검찰 편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생각은 판사 때도 막연히 했었는데, 변호사 해 보니까 정말 내가 한 생각 중 가장 옳은 생각이었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련다.

4. 먼저, 형사재판의 경우 운동장 자체가 기울어진 정도가 아니라 통곡의 절벽 각도이다.

판·검사, 피고인, 변호사가 뛰어노는 운동장은 수사기관이 작성한 수사기록이다. 수사기관은 불기소하기 위해 수사하지 않는다. 기소가 목표다. 당연히 수사기록 자체가 기소를 목표로 작성된다(물론 김학의 사건처럼 아닌 경우도 있다).

검사가 만든 운동장(수시가록)에서 판·검사, 피고인, 변호사가 뛰어논다. 판사들은 본인들이 심판이라고 생각하지만 검찰편 선수같은 분들도 있고, 심판같은 판사들조차 운동장이 절벽 각도인 걸 인식하는 분들은 많지 않다.

법원에도 유행이라는게 있는데 이용훈 대법원장 때 모토는 ‘공판중심주의’였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대법관 한 후 변호사를 하다 대법원장이 되셨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수사기록을 버려라”, “법정에서 심증을 형성하라”는 말을 해 검찰을 기절하게 만드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은 기록을 이 잡듯이 본다. 비판적 시각을 가지지 않고 기록을 보면, 검사들이 기록 사이사이에 발라놓은 독에 중독된다. 법정에서 뭔가 이상한데 라고 느꼈던 부분들이 기록을 보면서 이런 나쁜 새끼라는 감정으로 바뀐다. 통곡할 일이다.

5. 둘째, 형사재판에서 선택설계자는 완전히 검사 편이다.

‘넛지’라는 책이나 ‘코리끼를 생각하지 마’ 같은 유형의 책들을 보면 인간의 이성은 참으로 나약하다. 설계자의 선택에 따라 생각은 이리 저리 움직인다. 합리적 이성은 풍랑 속 종이배에 불과하다.

공판 검사는 재판장의 법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목사님들 가운을 닮았다. 아마 시각적으로 그런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구속 피고인의 경우 수의를, 불구속 피고인의 경우 사복을 입고 있다. 당신이 판사라면 누구한테 더 동질감을 느끼겠는가.

그리고, 많은 판사들은 호칭에서 공판검사에게 “검사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피고인에 대해서는 “피고인”이라 한다(드물지만 **씨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수사한 기록 중 어느 부분을 제출할지도 검사가 결정한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부분은 제출 안한다. 형사소송법에 피고인에게 수사목록을 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를 알고 있는 변호사도 드물고 실제 활용도 잘 안한다. 변호사 때 한번 해 본 적이 있는데 안낸 자료를 보니 가관이었다.

이런 면에서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한다고 절벽 운동장이 평지가 되기는 어렵다.

6. 셋째, 판사들은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판사들의 선입견도 무시 못한다.

검사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무고한 사람을 기소하겠어, 피고인이야 자기 죄를 감추거나 줄이기 위해 거짓말하기 마련이지... 판사들 역시 인간이기에 이런 생각이 무의식 속에 깔려 있기 마련이다.

억하심정 없는 검사도 직업적 속성상 기소로 달려가기 마련이다. 달려가는 이가 back하는 거 어렵다. 그간의 시간이 다 매몰비용으로 보인다. 그리고 솔직히 억하심정 갖고 수사하는 검사들도 있는 거 같다. 당연히 무고한 이에 대한 기소가 있다.

한편, 살인죄와 같은 중형선고가 예상되지 않은 다음에야 피고인이 거짓말하는 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잘못하면 골로 가는데 목숨 걸고 판사 앞에서 거짓말하는 피고인 많지 않다. 심지어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예상되면 괜히 다투었다가 실형 선고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툴 사건인데도 자백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선입견, 편견 등도 분명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판사도 인간이다.

7. 넷째, 판사들의 판단에 대해 피드백은 없거나 매우 부족하다.

판사들은 매일 매일 타인을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는 평가받지 않는다. 물론 항소심, 상고심에서 자신의 판결이 깨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새로운 증거가 나와 결론이 바뀌는 경우가 많고 솔직히 상급심 결과를 체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위와 같은 피드백은 판단의 과정이 아닌 결과에 대한 것일 뿐이고, 그나마도 판사들 세상에서의 피드백에 불과하다.

변협에서 하는 법관 평가라는 것이 있지만 예전엔 개별 법관들이 나에 대한 변호사들의 평가가 어떤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위 법관이야 언론에 나지만 하위법관은 누가 꼴찌라는 풍문만 떠돈다. 피드백이 될리가 없다.

판사님들 중에는 분명 갈라파고스에 주소를 두고 있는 분들이 있다.

8. 어찌할지에 대해 이런저런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검색해 보면 여러 이야기들이 나온다. 잘 안나오는 이야기 딱 두 가지만 하련다.

9. 먼저, 판결문 공개를 넘어 기록 공개다.

개인 정보 보호 문제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원칙적으로 판결문 공개는 당연하고 기록 공개까지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 판사들의 판단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

판결문만 보면 우와 완벽해 라는 판결도 기록과 함께 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꽤 있다. 판결문과 함께 기록이 공개되어야 법관의 판단이 올바른지 검증할 수 있다.

10. 둘째 경찰, 검사들이 조서 작성할 때 수사기관이 딴 짓 못하도록 영상녹화를 의무화해야 한다. '진실의 방'은 범죄도시에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서 작성시 자신의 이야기가 제대로 기록되는지 확인할 수 있게끔 처음부터 피의자, 참고인 앞에 모니터 설치해 실시간으로 자신의 진술이 어떻게 작성되는지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난 이 두가지는 즉시 해야 하고 또 효과적인 법원과 수사기관 통제장치라고 생각한다.

11. 법관 개인에 대한 비난은 문제이지만 판결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판결에 대한 검토는 법원의 심급제에 의한 통제 이외에 일반국민과 전문가의 기록 접근을 통해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이에 대한 검증은 시퍼렇게 날이 서야 하며,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법관은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된다(이는 검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판단이 틀렸다면 그에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말 판단하는 이들은 법대의 위에는 칼이 매달려 있고 아래에는 지옥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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