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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Kevin Kang

페친 정병욱님의 글 펌]

1985년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유시민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의 명문 항소이유서를 최초로 단독보도해 유시민을 전국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신문이 동아일보였다.

훗날 유시민 이사장은 동아일보는 글쟁이 유시민에게 일종의 지적재산권을 소유한 "아주 특별한 언론"이었다고 회고했다. 거꾸로 읽는 한국사와 세계사 시리즈가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항소이유서로 쌓은 명성 덕이 있으니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니다.

외환위기로 인한 원화 가치 폭락으로 급거 귀국한 진보적 자유주의자 유시민에게 선뜻 지면을 내준 것도 동아일보였다. 1998년부터 2000년 백분토론 사회자로 선임되기 직전까지 유시민은 동아일보와 주간동아에 기명 칼럼을 연재하며 끊임없이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었다.

비단 유시민 이사장 뿐 아니라 많은 민주인사들이 동아일보에는 어떤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5.18 광주민중항쟁이 터지자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뜻으로 5일간 사설을 싣지 않은 신문이 동아일보였고, 전두환 체제의 종말을 알리는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단독 보도한 신문도 동아일보였다. 호남지방은 아직도 동아일보 구독률이 1위인데 그러한 역사적 맥락이 서려있다.

동아일보가 현재의 조중동으로 불리는 극단적 수구언론이 된 것은 2001년 국민의정부에서 실시한 언론사 세무조사의 영향이었다. 세무조사 도중 김병관 회장의 배우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아내의 죽음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한 국민의정부 탓이라는 헛된 추측을 한 김병관 회장이 본격적으로 편집국에 간섭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족벌언론이었음에도 동아일보가 군사독재를 거치는 동안 꽤나 민주적인 언론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주 일가가 조선일보의 사주 일가와는 달리 일선 편집국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한 덕인데 부인이 죽고 증오로 눈이 뒤집힌 김병관이 편집국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기 시작하며 급속도로 수구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낙연 대표는 2000년 초까지 동아일보에서 근무했으니 동아일보의 수구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때 동아일보는 유시민 이사장과 같은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 자유주의자들도 칼럼을 연재할만큼의 역량이 있는 균형적 중도언론이었는데, 이에는 기자 시절의 이낙연 대표와 같은 개혁적이고 양심적인 중견 기자들의 노력이 절대적이었을 게다.

오히려 이낙연 대표를 비난하는 강진구 기자가 몸담고 있는 경향신문이야말로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언론사다. 박정희 독재정권 때는 박정희에 부역했고, 전두환 독재정권 때는 전두환에 부역했으며, 노태우 때는 노태우와 재벌에 부역했다. 경향신문이 진보언론 소리 듣게 된 건 1998년 한화그룹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사원주주제를 시행하게 된 이후부터다. 그러나 그 마저도 한화 시절 채용되었던 기자들은 수구 성향이 있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대체 누가 누구를 무슨 경력으로 비난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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