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인의 편지를 공개한 이유]
기자 몇 분은 고소인의 편지를 공개한 이유를 이야기했음에도 제 발언은 무시하고 2차 가해의 프레임속에서 사안을 접근하고 있습니다. 입장과 해석이 다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조금이나마 탐사하려는 노력과 사고력이 보이지는 않고 그저 속보에만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소통의 전제는 경청이고 경청은 선해(善解)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입장일지라도 상대방의 주장이 어떤 근거와 논리, 맥락에서 이야기되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을 넘어 합리적 의사판단과 대응을 할 수 있게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고인과 고소인의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고소인의 주장중에서도 모든 것을 반박할 만큼 알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소인측이 기자회견을 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시장님을 고소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것들에(시장실에 강제 차출된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나, 4년 동안 지속적인 성추행으로 고통을 당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주위 수십명에에게 피해를 호소하였고, 8번에 걸쳐 전보요청을 했다는 것들, 그리고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아닌, 비서업무의 내용에 대한 불만등) 대해서는 모두 반박할 수 있었습니다.
명확히 합니다. 제가 반박한 내용 그 자체는 여전히 제가 모르는 ‘성추행 또는 성희롱’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 증거가 아닙니다. 그러나 두서없이 나오게 된 반박증거나 증언은 모두 일관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고소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관되게 고소인이 보여준 모습이 비서 업무를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수행했으며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챙겼다는 것입니다.
즉, 저는 고소인이 주장하는 성추행 및 성희롱 자체에 대해 고소인을 비난하거나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모르는 영역이고, 지금까지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주장외에는 증거를 들은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소인의 고소 이유를 설명하는 많은 주장들이 반박이 되고, 재반박이 없거나, 재반박의 논리가 궁색하다면 합리적인 사람은 어떤 판단을 할 것입니까?
나중에 제가 인정해야만 하는 증거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고소인측이 주장하는 것이 반박당하면서도 재반박을 못하거나 궁색한 논리로 답변하는 상황에서 저의 인식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4월 13일까지 고인의 SNS에 좋아요를 누르고 시장실 동료들과 모임을 했던 고소인이 4월 중순 이후부터 김재련 변호사를 찾아갔다는 5월 사이에 무언가 달라진 것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모릅니다.
장례기간과 천도재 기간 멍하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라는 생각에 허망함만 있을 때, 고소인측의 2차에 걸친 기자회견, 수 차례의 방송 및 신문의 인터뷰등을 통해서 오히려 거짓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아무 정보가 없었던 상황에서 고소인측의 주장, 언론플레이가 늘어날수록 증거와 증언에 의해 반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른바 4월 사건을 마치 자해하듯이 스스로 공개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지만, 최근에야 제 나름대로의 추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권력형 성범죄]라는 표현의 잔인함과 의도
고소인의 고소사건에 이어 가로세로연구소에서 고발한 성추행등 방조사건에 있어서 시장님을 모셨던 많은 보좌진들이 피고발인으로 또는 참고인으로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고소인측은 명확하게 기자회견등에서 보좌진들이 피해호소를 묵살하고 전보요청을 묵살하는 등 방조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시장님의 선택으로 인하여 시장직이 궐위가 되고 코로나 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시민과 서울시에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동안 자제하고 자제하면서 검찰, 경찰, 인권위원회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고소인측의 수차례의 언론플레이에 의해 시장님을 보좌했던 많은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매도당하고 심각한 명예를 훼손당했습니다.
고소인측은 서울시에서 진상조사를 하라고 요구하였다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흐지부지되었고, 인권위의 조사도 반대했다가 직권조사를 압박하여 직권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9월24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박 전 시장과 각별했지만, 그를 딛고 가겠다. 그가 처음에 달성하고자 했던 것, 그러나 끝내 문화까지는 바꾸지 못한 것을, 그렇게 해내겠다. 박 전 시장과 친한 사람들 앞에서도 똑같이 말한다. 박원순을 딛고 가야 한다고.” 무엇을 법적으로 확증할 수 있기에 고인을 딛고 고인이 달성하고자 했던 것을 해내고자 합니까?
이후,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시장님 사건을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하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인사청문회의 특성상 더 큰 논란을 피하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권력형 성범죄]라는 표현의 잔인함과 의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권력형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권력형이라는 것은 업무 및 업무 수행관련하여 직위 또는 위계질서에 의한 강압, 구조적인 문화의 강압등을 의미하는 것이며 본 건에서 있어서는 시장님 뿐만 아니라, 시장님의 보좌진도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이 될 것입니다.
권력형이라는 것은 조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서울시의 사용자 책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이것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고소인(피해자, 피해호소인 - 저는 이런 명칭 자체는 본질이 아니며 오히려 정치적인이고 운동적인 측면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의 보상에도 논리와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강제조사 권한이 없는 국가인권위에서 권력형 성범죄를 인정한다면 말입니다.
비록 강제조사권한이 없고, 권고적 효력만 있는 인권위원회 보고서에서 본 사건을 권력형 성범죄로 판단할 경우에는 아마도 사용자책임 인정에 일정한 근거가 되는 여성인권의 향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입니다. 인권위에 제출한 의견서에도 썼지만, 형사법적인 최종 결론 없이는 ‘박원순’을 여성운동의 계기로 ‘당신들이’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잔인한 것입니다.
권력형이라는 의미는 또한 보궐선거 관련하여 정치적으로도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각 정당에서는 권력형 성범죄라는 비판을 앞세우고 있는데, ‘고소’라는 법적 절차, 그 이후의 수사 및 재판에 이르지도 못하였는데 해당 조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관장이 권력형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언급을 하거나, 공직후보자가 [권력형 성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신의 차원을 넘어 형사법상의 제 원칙을 다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권력형이라는 의미는 시장님의 명예뿐만 아니라, 시장님의 보좌진에게도 여전히 불명예 또는 방조의 멍에를 씌우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고소인의 시장님께 보낸 편지는 권력형이 아니라는 반박이며, 시장님을 변호하는 동시에 제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위와 같이 권력형이라는 의미는 현재 다양한 이해관계속에서 상승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켜야 할 것은 한국 사회에 초인적으로 헌신한 고인의 명예일 뿐입니다. 그리고 보잘 것 없지만 고인과 함께 했던 시간의 제 명예입니다.
편지내용에 대해서 그것조차 의무적으로 생일날 써서 드리는 것이라고 대응하는 것을 볼 때, 역시 편지를 공개하여 그 내용을 시민들이 보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구나.라고 역설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고소인이 주장하는 성추행, 성희롱 자체를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4년 동안 고통을 당했다는 주장, 권력적이었다라는 주장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간접 증거입니다. 물론, 위 편지를 공개하려고 생각하고 법적 검토를 당연히 거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언론플레이는 누가 하였고, 고통스러운 내용을 누가 공개하였습니까?
추가로
편지를 공개한 날, 어느 기자는 본 사건을 처음 맡게 되었다고 하면서 저에게 고소인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만약 제가 고소인의 이름을 언급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이용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섭습니다. 저는 경찰에서도, 인권위에서도 고소인의 이름을 언급한 적 없으며, 공개한 편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글이 각자의 정치 성향과 같은 믿음의 영역으로 나누어진 채 이해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른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그런 글에 열린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더 이상 기자분들의 연락을 받지 않겠으며, 고소할 것, 피고소건 등은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대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