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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Byung Keum

<조두순의 패션과 검찰사법개혁>

1.

지난 주 조두순의 출소가 있었다. 단연 그의 출소는 이미 며칠 전부터 장안의 화재였다. 12년 전 이골이 갈리고, 온 국민을 몸서리치게 했던 초등학생 8세 아이의 영혼과 육체를 유린한 희대의 색마(色魔)의 출소이기 때문이다. 조두순의 나이가 적지만은 않은 70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범죄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원한 범죄를 걱정하고 무서워한 것이다. 벌써 그의 출소 소식을 들은 인근에 사는 가구 중 몇 가구는 이사를 떠났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은 인지상정이다. 누가 그런 자를 좋아하고, 살인마 가까이에서 살고 싶어 하겠는가!

2.

이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법들이 제대로 지켜지거나 집행되지 않는 거의 솜방방이 수준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성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이다. 관대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봐주기 수준이다.

코로나 기간 중에 고작 달걀 18개 훔친 사람에게 18개월 형을 내렸다. 그 정도의 경미한 생계형 범죄에 중형을 선고한 셈이다. 수십 수백억 해 쳐 먹은 사기범이나, 국짐당 계열 홍정옥 딸의 마약 밀반입, 음주운전 교통사고 운전자 바꿔치기로 물의를 빚은 장재원 아들에게는 집행유예로 그저 선택적 솜방망일 뿐이다.

3.

반면에 유독 성범죄에는 경미한 처벌을 내린다. 이게 색검과 색판 세계의 어떤 동류의식, 동지간 의리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일례로, 성착취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는 18년도 아닌, 달걀 훔친 사람과 같은 18개월 형을 살고 출소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미국의 경우 성착취 사이트에서 다운만 받은 경우도 15년형을 때렸다고 한다. 선진나라들의 경우, 조두순 정도의 범죄라면, 사형선고나 무기징역, 최하 형량이 500-600년을 때린다.

이것은 사회로부터 영원한 격리를 내리는 징계이다. 평생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반성하고 사죄하고, 뉘우치며 살아라는 뜻이다. 사형 안 시키고 그런 조치를 취한 것만 해도, 최소한의 인권은 남겨둔 셈이다. 하지만 그 잔악한 범죄자에게 당한 피해자와 가족들의 인권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렇게 그들 선진나라들은 전과자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4.

조두순이 출소하던 날, 그의 모습 특히, 그의 패션에 관심이 쏠렸다. 그가 입은 패딩은 아웃도어 아이더란 회사의 브랜드로, 이번에 조두순으로 인한 이미지 훼손으로 우거지상이 되었다. 이는 사회적 물의나 논란을 일으킨 옷이나 악세사리 등이 화제가 되는 이른바 범죄자들의 패션 블레임룩(Blame Look) 현상이다. 과거 신창원, 최순실, 정유라, 조주빈 등이 반향을 일으킨바 있다.

이로보건데, 옷은 옷일 뿐인데, 그 옷을 누가 입었느냐가 그 만큼 중요하다. 조두순이 입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 옷은 범죄자의 패션이 되고 만 것이다. 옷이 날개라지만, 옷은 사람의 품격에 의해 좌우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패션의 광고학이자 인생학이다. 누가 그 회사 브랜드의 옷을 걸치느냐에 따라 가치상승과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는가 하면, 엄청난 손실을 끼치는 정도 역시도 천양지차이다.

5.

여기에서 나는 성경에 소개된 인간의 의복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다. 창조의 백미, 걸작품은 단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다. 그런 인간에게 제공된 에덴동산은 지상의 낙원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첫 인류의 조상은 하나님과 맺은 선악과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 그로인해 아담은 낙원에서 추방된다. 놀라운 것은 그 추방의 역사가 곧 은혜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진멸이 아니라 유예와 보존 그 자체가 은혜다.

6.

하나님 면전에서 추방은 곧 회심과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 은총을 상징해준 것이 바로 옷이다. 아담과 그의 부인 하와가 낙원의 하나님 면전에서 추방될 때, 하나님이 취한 조치에서 그의 은총이 중단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변화된 기후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취하신 은총의 조치가 바로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신 것이다.

옷은 인간이 변화된 지구환경에 적응하고, 체온조절 등 인간의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 유지에 생필품이 되었다. 의복은 또한 해충과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요인으로부터 상처를 예방해준다.

7.

무엇보다도 옷은 사람의 벌거벗은 수치를 덮어주는 수단이다. 사실 수치감이라는 감정은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는 아예 없었다. 죄를 지음으로 죄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그로 인해 수치감도 생겨났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에 먼저 일어난 변화는 의식의 변화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벌거벗은 것을 보고 수치를 느꼈다. 그런 양심의 가책이 없으면, 타인에 대한 살기나 하나님께 대한 저항과 반역은 더 클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양심을 거두지 않으시고, 심기어 두셨다는 증거이다.

8.

그러고 보면 수치를 못 느낀다는 것은 양심이 화인(火印), 즉, 불도장을 맞아 감각이 없어진 자들의 모습이다. 사람이 수치심을 느낀 것 자체 역시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 수치심마저 사람들 마음에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 금수나 다름없다. 그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날마다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이런 인간들의 죄와 죄의식, 죄책감, 죄로 인한 수치와 수치감, 죄과(罪果) 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그의 아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해, 우리의 의복을 통째로 바꾸는 것이었다.

9.

예수는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 사함의 길을 열어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 인생들에게 하얀 의의 옷을 지어 입혀 주심으로, 죄인들의 죄를 덮어주시고, 인생들이 의롭게 되는 길 역시 보여주셨다. 나는 페친들과 이 세상 사람들이, 장차 그 의의 옷을 입고,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서게 되기를 기도한다. 예수의 의의 옷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과 영생의 선물을 받는 표징이 될 것이다.

사탄마귀는 나쁜 검사(檢事, Prosecutor)들처럼 우리 인생들을 재판정에 밀고, 참소, 고발, 기소한다. 그런데 우리의 가장 의로우신 중재자(Mediator) 예수는, 그 안에서 의롭게된 죄인인 우리를 변호(辯護, Pleading)한다. 하나님은 최후의 재판 법정에서, 예수의 의의 옷을 입은 죄인들에게, 혐의 없음 판결과 함께 의와 영생의 면류관을 씌워 주실 것이다.

10.

이번 조두순 출소에서 보여주듯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알게 된 것은, 어떤 옷을 입었느냐보다, 누가 그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옷보다도 그 옷을 입은 사람이 가치를 결정짓는 시금석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차별한 것은 아니지만 거지가 제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의 좋은 옷을 입어도 그 옷은 폼이 나지 않는다. 금방 더러워지고, 빛도 나지 않는다. 그저 거지의 옷일 뿐이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상징한다. 왕이 입은 용포(龍袍)나 어의(御衣)가 촌부의 일복과 차이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1.

기업들이 유명한 인기 연예 스포츠 스타들을 이용해 비싼 광고를 제작한다. 그만큼 스타가 갖는 상징성이 크다는 반증이다.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라도, 그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한 상품성은 수백 수천 배의 이익을 창출해준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른바 ‘스타 마켓팅’이다. 옷 자체는 옷일 뿐이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의 가치와 품격에 따라 그 패션의 품위와 영향력은 달라진다.

12.

한 가정과 가문의 명예는 그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패션이나 가오 보다 인격과 품격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나라의 국위와 국격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국민 개개인들이 어떤 시민정신과 국민의식을 가지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품위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나라 이미지도 결정된다.

가정이든 국가든 개인들이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가보다? 어떤 인격이고, 어떤 행동을 하고 사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과 품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매겨지고 결정된다. 사람의 옷은 인격의 품격에 따라 우아하고, 존귀하게 보이기도 하고, 역겹고 가증스럽게 보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13.

나는 기독교 목사이자 선교사이다. 만약 나의 언행심사가 개망나니 같은 짓들, 요즘 시대 같으면, 정부의 방역 노력을 교회 탄압행위니, 식당이나 술집은 놔두고 교회만 가지고 난리다고 말하는 자들처럼 지껄이고 다닌다면, 내가 믿는 예수,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더럽히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나의 인격의 옷을 보고, 하나님과 교회의 이미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표리부동하지 않고,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나의 행실 때문에 천국 브랜드, 하나님과 예수와 교회 브랜드의 가치가 손상되고 욕을 먹고, 더렵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14.

우리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고 세상을 살아간다. 또, 경찰은 경찰제복, 검사와 판사는 법복이라고 하는 옷을 입는다. 원래 법복은 공의와 공법을 집행하는 검판관의 상징이다. 그런데 지금 그 옷이 더럽혀 질대로 더럽혀져있다. 그 옷을 입은 검판사들 때문이다.

그들이 세상의 몹쓸 짓들은 다 하고 돌아다니는 통에, 그 정의와 공평의 상징인 법복마저 때깔이 나지 않고, 그들이 구속만 안당하고 있을 뿐이지, 거의 죄수복이 되고 말았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 검판사들이 입고 있는 옷은, 가장 큰 죄 덩어리를 감추고 있는 은폐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5.

이제 그 옷으로도 그들의 수치와 모욕을 덮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 스스로 그것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채, 스스로 정화하거나 개혁할 수 없어, 그들의 잘못된 관행과 행실을 드러내고, 죄를 알게 하며, 상응한 처벌을 내리고자,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가 탄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시대 21세기 최대의 화두가 된 검찰, 언론, 사법부 개혁을 부르짖는 마당에, 조두순에 대한 짧은 형기 등 솜 방방이 법, 팔굽혀펴기 1,000개를 하면서 출소를 기다리며, 이웃들과 우리 국민들을 긴장시키고 불안에 떨게 한, 전과자의 대책 없는 무방비 출소 등 조두순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은, 지금의 검찰과 사법부 개혁의 방향까지 제시해주고 있다.

16.

도대체 법의 의미는 무엇이며, 법은 왜 만들었는가? 법은 왜 존재하는가? 그러면서 준엄한 명령을 내린다. 법을 누구보다도 더 엄격하게 지키고, 모범을 보여야 할, 법을 다루는 자들인 검사 판사들 니기들이, 가장 법을 개 무시하고, 법을 유린하고 지키지 않고 있다. 법을 가지고 장난치고, 너희들의 죄를 덮은데 사용하고, 정치권력을 휘두르는데 악용하고, 너희들 재산과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로인해, 국민들의 생선을 검새, 판새 고양이들에게 맡겨놓은 꼴이 되었다. 이에 깨어있는 국민들이, 대한민국에 법이 살아있음과 법의 무서운 맛을 보여주자. 지금의 검찰청에 대한 해체수준의 개혁을 완성한 후 기소청을 신설 하자고 외치고 있다.

17.

따라서, 우리 국민들이 뽑아준 국민들의 대의기관이자 헌법기관인 국회를 통해, 공수처법을 만들어 통과시킨 것은, 검판사는 물론 고위공직자들이 환골탈태하고, 개과천선 중생(重生)하게 한 후 깨끗한 법복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그동안 검사 판사들의 ‘블레임 룩’에 대한 상징이미지와 명칭도 다양하다. 색검, 떡검, 검레기, 검새, 검개, 판새, 판개, 판레기 등 도대체 이게 뭔가?

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범죄자의 상징적인 호칭인가? 이 정도면 자존심이 있는 검판사들이라면, 스스로 발 벗고 나서서 시대적인 권력기관 개혁에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들이 지금 보이고 있는 행동은 집단적 저항과 최후의 발악뿐이니, 공수처 설치와 가동은 역사의 준엄한 명령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18.

아울러, 이제 국민 된 우리들 역시 냉엄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국민인가?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어떤 옷인가? 나는 우리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의 이미지에 데미지를 입히고 있지는 않는가? 나 때문에 공동체의 옷이 더럽혀지고, 손해를 끼치고 있지는 않는가?

반대로, 나로 인해 그 옷이 빛나고, 품위가 살아나고, 가치가 드러나며, 브랜드가 살아나고, 인격의 향기를 발산함으로, 걸어 다니는 광고 마켓팅의 효과를 발휘하게 해주는지를 물어야 한다.

19.

우리 자신의 행실 때문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브랜드,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민족정신, 민주주의의 가치 등이 훼손되게 하는 ‘블레임 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민족의식과 역사의식, 민주의식과 시대정신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들, 프레이즈룩(Praise Look), 아너룩(Honor Look)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수구기득권, 극우패권, 친일매국분자들아, 내 나라,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그 빛나는 명예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마라! 그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70년 아니 120년 적폐의 더러운 ‘블레임 룩’을 불태우고, 참회하라!그리고 새 사람이 되어, 새 시대 새 역사의 정의와 공의의 새 옷을 입으라! 그리하여, 그 옷이 깨끗하고 정결한 홀리룩(Holy Look)이 되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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