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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펌: 연광흠 신부(천주교 대전교구) 글)

후배신부가 모 단체 전국 모임에서 물었단다. "요즘 각 교구의 신부님들은 검찰개혁에 대해 본당에서 어쩐대요?" ... “우린 말도 못 꺼내요”... 이구동성 같은 대답이란다.

난 열혈사제는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 못하고 눈치 볼 거면 왜 사제가 되었을까? 그냥 먹여주는 밥 먹으며 편히 살고자 하는 직업으로 사는 게 아닐 텐데. 허긴 교회의 장상들부터 신자들 눈치보고 조용하니 그렇겠지? 교회가 분열이 일어나 신자들이 떨어져 나갈까봐... 불의에도 눈감고 정의를 가르치지 못하는 벙어리 사제들로 살아야하는가?

세상기류에 끌려가는 그러면서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는 사제들... 그러니 돈이나 모으고 특별히 신경 안써도 밥 잘 먹으며 골프다 레포츠다 하면서 편히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삶인가!! 그러면서 정치해서는 안 된다고 떠드는 신자들 눈치를 보며 존경받는 사람으로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겠지...그런데 어쩐답니까. 나 같은 보잘 것없는 사람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심하고 불상타 여기는 것을... 좋은 직업 가졌다고 폄하하고 비아냥대는 것을...

우리는 주님의 뜻을 살기위해서 이미 시작부터 분열을 살아야 하는 것을... 모르는가? 왜 두려워하는가? 숫자를 늘리고 지켜야 하는 것이 선교의 본질은 아니질 않는가? 불의에도 눈감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얄팍한 신앙의 삶이 신자들에게나 성직자 수도자들에게도 다 문젯거리 아닌가?

개먹사 소릴 듣는 개신교보단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돈이든 힘이든 교회에 많이 봉헌하는 일명 능력있는 신자들과 어울리는 것에만 눈이 벌건 ... 자기 것은 내 놓을 줄 모르고 작은 것들은 무시하는... 그런 게 개먹 짓이 아닌가?

나는 요즘 사제가 뭣하는 사람이고, 신앙인은 뭣하는 사람인가?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지만 답은 없다. 시노드가 끝난 요즘 소통과 친교로 복음을 살고 순교자의 본보기를 마음에 새기며 복음화를 이루고자 하는 교회 공동체... 그 속에 내가 있지만...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 주님을 닮은 십자가를 짊어지는 사제나 신앙인은 별로 많지 않은 듯하다. 또한 주님의 가르침을 용기있게 사는 신앙인도 사제도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순교자의 삶을 닮자고 말하지만 순교자는 커녕 순교자적인 용기와 내어놓음이 없는 교회에서 어찌 순교자가 나올 수 있겠는가?

과연 누가 순교한단 말인가? 신자들 눈치만 보고 세상 불의에 눈감고 있는데... 스스로 먼저 생각해보자. 어지러운 세상 분위기에 압도되고 영향을 받아 조심스럽게 눈치보며 살아야 하는 교회... 그 구성원들의 모습에서 ‘성령을 잃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가 성령을 살아야 하는데... 성령을 잃어버린 교회는 힘도 없고 정체성도 잃어버릴 것이다.

난 신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가끔씩은 신자분들 말씀에 놀라기도 한다. 난 일상을 살았는데... 일반 가족들처럼 신자들을 대하면서 같이 밥 먹고 수다도 떨면서 신앙과 세상 이야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갖는 모습으로 일상을 살았는데... 신자분들은 특별하다고 여기신다. 수십 년을 신앙생활하며 살았어도 당신들을 위해 밥 사는 신부를 처음 봤다고...같이 밥을 먹는 일도 어렵지만 밥 사는 일이 신자들 몫인냥 여기는...이런 말씀에 난 너무나 놀랍기만 하다. 사람사는게 다 그런거 아닌가?

소통은 차별하지 않는 것에서 오지 않는가! 계층과 직분을 뛰어 넘는 존중과 배려 속에서 나오는 소통이 친교를 이룰 것이다. 장상과 신부, 신부와 신자 안에서 복종을 원하는 듯 한 순명, 관례와 고정된 틀로는 묶어두는 관계는 결코 소통은 커녕 친교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신부도 신자들을 위해 밥도 만들어 주고 살 수도 있다. 관계는 주고받는 것이 아니던가. “신부님이 무슨 돈이 있어요”라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신부도 음식 대접 할 만큼 월급 받습니다.

신부는 정치적인 얘기 안했으면 좋겠다고 신자분들은 얘기한다. “그럼 여러분들이나 저나 정치적인 일들에 영향을 받고 사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사느냐”고 나는 되묻는다. 무엇이 정치적인 것이고, 무엇이 진영논리인가?

어른들이 진영논리로 말하지 말자고 말하면서 자신들이 이미 진영논리에 빠져 있는 줄을 모른다. 진실과 사실은 확실하게 몰라도 거짓은 알 수 있는 게 세상 현실이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불의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참된 정치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해도 일상은 정치적인 것 안에서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제도 신자도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삶의 자리에서 그렇게 적용되어지며 산다. 그런데 신앙인들은 세상을 살면서 다른 점이 있다면 주님의 뜻을 그런 세상살이에서 반영하며 산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삶, 깨어있는 삶이 어디 죽어서 나오는 것인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적용하고 반영해서 사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던가.

예수님은 죄 많은 세상 속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탄탄대로의 편안한 세상 속에서 죽지 않으셨다. 예수님도 정치적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체제전복을 꿈꾸는 분으로 고발당하고 하느님 모독죄를 씌워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이다. 그분을 따르는 우리는 어떤 것을 따른다는 사람들인가? 예수님의 가르침도 세상살이에 맞지 않는다고 싫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길도 싫고, 가르침을 따르는 삶도 힘들다고 자주 외면하면... 무엇을 따르겠다는 것인가? 그냥 간판만 지니고 내어놓는 삶 없이, 구체적인 가르침의 따름을 위한 희생과 노력 없이 은총만 받고 싶은 것은 아닌지???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되어 갔고, 자신들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면서도 제자들은 세상 분위기에 두려워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성령을 받으면서 용기 있게 세상을 향해 뛰어들고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하였다. 감옥에 갇히고 죽음을 맞으면서도 세상을 이기고 생명을 살게 하는 주님의 삶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성령의 은총으로 이뤄진 교회라고 말하지만 정작 성령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용기도 없고 어두운 현실에 묻혀 불의 앞에서도 말도 못하고 죽은 교회처럼 침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요즘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사제로서도, 몇몇 국회의원들이 부끄러워 정치 못하겠다고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 것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과연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할 우리는 세상을 향한 빛을 지니고는 있는가!

질서가 잘 잡힌 정의로운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불의가 난무한 세상 속에서 불의를 줄이고 바꿔나간다면 가능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과 불법이 판치는 세상,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차별이 판치는 세상, 진실보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 상식이 사라진 불법천지의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목소릴 높여 외치는 것이 아닌가? 검찰개혁, 언론개혁, 정치개혁, 교육개혁, ... 다 좋다. 그런데 이런 게 자신들의 사고에 대한 개혁 없이 가능할까? 국민다운 사고와 신앙인다운 사고, 자기 직분에 맞는 사고와 삶의 자리를 지켜내는 질서를 위한 자기 쇄신, 자기 개혁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

그러나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께는 너무나 죄송한 말씀이기에 용서를 청하며,... 포기하고 싶지 않은 현실, 주님의 은총을 기대하며 사는 신앙인이요 사제요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답답한 마음을 나누고 힘을 얻고 싶어 이렇게 긴 너스레를 떨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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