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계시는 분 찾아 봐 주시기를...
같이 조금 더 견뎌 주시기를...
2016년 그 사건 이후, 다시 10월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성폭력 의혹'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 보고 견딜 수 없을 때까지도 견뎌 보았습니다. 매년 10월만 되면 정수리부터 장기를 관통해서 발바닥까지 온갖 통증이 저의 신체를 핥는 느낌입니다. 정말 지겹고 고통스럽습니다.
저의 돈을 들여 아무도 읽지 않는 시집을 출판도 해 봤습니다. 죽고 싶을 때마다 꾹꾹, 시도 눌러 써 봤습니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습니다. 살려고 발버둥칠 수록 수렁은 더 깊더군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평생을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철학자는 암 선고를 받고서야 비로소 그 충동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지금 제 심정이 그렇습니다. 제 자신이 선택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시집 복간, 문단으로의 복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살부빔,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단지 성폭력 의혹에 휘말렸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잃는 사태가 저에게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어떤 의혹과 의심과 불신만으로 한 사람이 20년 가까이 했던 일을 못하게 하는 풍토는 사라져야 합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 삶에 미련이 없는데도 이렇게 쓰다 보니까 미련이 생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지금은 대통령으로 계신 한 정치인을 사랑했고 시를 사랑했고 썼고 좋은 자식, 좋은 남자,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응원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점 찍어 둔 방식으로 아무에게도 해가 끼치지 않게 조용히 삶을 마감하겠습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저의 시집 <식물의 밤>이 부당하게 감옥에 갇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저의 시집 계약이 부당하게, '단지 의혹만으로' 파기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유튜브로 영화를 처음 다운 받았습니다. 오달수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입니다. 장면들도 좋지만 음악이 더 좋은 영화입니다.
The last waltz.
모두가 꿈 같습니다.
멀리 저 세상에서 이곳을 열렬히 그리워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곳의 삶은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아시길. 모두가 행복하진 못하더라도 더 불행해지진 마시길,
간곡하게 두 손 모아 마지막으로 기도합니다.
- 2020년 10월 14일 박진성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