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순

페이스북 2020. 9. 23. 09:25

< 인간됨을 지켜내야 하는 과제>

1. 매일 뉴스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미소를 품고 살아가기 참으로 힘든 현실이다. ‘미소’야말로 인간의 인간됨을 드러내는 소중한 몸짓이다.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아름다운 음악,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과 풍경, 어떤 이의 선함을 목격하고 경험할 때, 우리는 미소를 짓는다. 미소는 인간의 합리적 인지작용 너머의 세계에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점점 진정한 미소 짓기가 참으로 힘든 세계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미디어들은 엄청난 영향력과 변화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을 모두 방기하고서, 그 긍정적 영향력의 잠재성을 엉뚱한 곳에 쏟아 붓고 있다. 마치 하수구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몽땅 버리고서, 정작 식탁에는 먹으면 독소를 뿜어내는 상한 음식만을 올려놓는 것 같다. 인간이 지닌 권력에의 욕망에 대한 비판적 자기성찰이 부재할 때, 그토록 추한 모습으로 인간은 재현될 수 있는 것인가 보다. 미디어의 존재 이유가 마치 사람들 속에 분노와 증오의 씨앗을 심어서 한국 사회에 반민주적, 반성찰적 구성원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이 반민주적, 반성찰적 인식세계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그 엄청난 에너지와 가능성을 그렇게 낭비하면서 '공공선(common good)'의 창출이 아닌, 파괴를 선도할 수 있는가.

2. 도대체 인간이란 누구인가. 이 물음은 고대로부터 철학과 종교가 씨름해온 것이다. 시대적 정황에 따라서 신과 같은 위대한 존재라는 인간에 대한 고도의 낙관적 이해가 지배하기도 하고, 철저하게 악한 존재라는 지극히 비관적 이해가 지배하기도 한다. 또한 낙관적 이해와 비관적 이해의 얽힘 속에서 인간의 추함을 최소화하고자 부단히 애쓰는 소수의 사람이 존재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선한 존재도 또는 악마적 존재도 아니다. 개인으로는 선한 존재로 살아가기도 하면서, 동시에 공적 공간에서는 그 극단적 추함을 극대화하기도 하는 개인들이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거대한 오류와 권력에의 이기적 집착이 빚어내는 갖가지 절망적 위기 상황을 대면하면서, 한 개인의 힘은 참으로 미약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적으로 나 자신을 지켜내는 것, 나 자신의 인간됨을 지켜내는 것은 더욱 절실하다. 여기에 우리의 부단한 '자기 책임성'이 요청된다.

3. '자기 책임성'을 작동시킬 때, 나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공공의 삶을 끊임없이 반추하면서 스스로 증오와 혐오의 감옥으로부터 자신을 끄집어내는 것이 가능하기 시작한다. 나와 전적으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증오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증오 장치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간됨을 파괴한다. 그 어떤 변혁 운동이든, 예술과 종교, 또는 철학적 담론이든 자신속의 인간됨(humanity) 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스스로가 증오와 혐오의 감옥속에 갇히지 않도록 자기 성찰에의 책임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무엇을 하든 결국 우리의 살아감과 이 현실 세계에의 개입이란 나의 인간됨을 실천하는 것임을 나에게 상기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이 토마스 크바스토프 (Thomas Quasthoff)다. 나에게 크바스토프를 소개해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도처에서 인간의 추함을 목도할 때마다 절망의 그림자가 뒤덮을 때, 나는 그의 노래를 듣고 그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바라보곤 한다. 132cm 가 되는 작은 사람, 소위 '비정상'의 팔과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뭇 사람들로부터 조롱, 증오와 혐오, 그리고 배제와 차별의 경험을 지니고 살아야 했을 크바스토프다. 그러한 타자로부터의 배제와 증오의 경험을 자신 속에 내면화시켰다면, 그는 그러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타자로부터의 증오와 혐오를 내면화했을 때 우선적으로 파괴되는 것은 자신이다. 그 어떤 요소도 자신의 내면세계와 자신의 인간됨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크바스토프는 그의 전존재로 내게 상기시킨다. 나는 이 세계를 바꿀 위대한 영웅적 인물을 기다리지 않는다. 개별인들이 자신의 인간됨을 지켜내는 사회, 그러한 개별인들이 조금씩 많아지는 세계를 기다리고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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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크바스토프의 노래, 두 편을 나눈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반주로 하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에 나오는 “Gute Nacht”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JETtWr47PY...

** 독일민요의 4중창, “In einem Külen Grunde (서늘한 산골짜기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i-BrW6XfS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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