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교수

페이스북 2020. 9. 23. 09:22

<고(故) 박원순 시장 비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 김민웅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의 진상을 알고자 하는 한 시민)

2020년 9월 22일(화)

1.

귀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면식(一面識)이 없기도 하려니와 혹여 의도치 않은 명예훼손이 될까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명예훼손의 가능성은 고 박원순 시장과 귀하 모두에게 해당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공개서한에서는 존칭의 의미를 담아 "귀하"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그간 겪었을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에 깊은 위로를 보내드립니다. 동기나 의도 여부를 떠나 한 사람이 목숨을 버렸으니 그 또한 감당키 어려운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주장하고 계시는 성추행 피해를 극복하는 일도 어려운 터에 이런 상황까지 일어났으니 그 정신적 혼돈과 아픔은 이루말할 수 없으리라 짐작해봅니다.

부디 잘 이겨내시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사람의 생명은 우주보다 더 소중하고 무거운 것이니 그 어떤 경우에도 불행한 생각은 결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공개서한을 보내는 까닭은 분명합니다. 인생 최대의 고통을 겪고 있을 텐데 그에 더하여 괴롭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명확한 설명을 “직접” 해야 하는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기 때문입니다. 사건을 둘러싼 불필요한 억측과 2차가해라는 정체불명의 개념 그리고 잇달아 나오는 여러 정황적 반증을 정리하는 일이 이 모든 상황에 명확한 종지부를 찍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귀하를 지원하는 법률 대리인과 여성단체들이 있긴 하지만 아쉽게도 사건의 진실을 전하는 데는 도리어 난관을 조성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귀하의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일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 부탁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귀하의 고통과 연대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박원순 시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의 끈을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절실합니다.

2.

저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한 달 전인 8월 18일, “한국 여성의 전화”와 “한국 성폭력 상담소”에게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한 공개서한을 질문형식으로 SNS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읽지 않았을 리 만무한데 아무런 답변이 없습니다. 이만큼 기다렸으니 곧 내용증명으로 공식 전달할 예정입니다.

3.

그 공개질문서에서 제가 물었던 내용의 핵심은 다음의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성추행 고충으로 인한 부서이동 요청”에 대한 주장과 제시한 증거물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와 모순이었습니다. 제시한 내용으로만 보자면 부서이동 요청이 성추행 고충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선호부서 이동 요청인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귀하로서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대목일 것입니다.

둘째, “지속적인 음란문자의 실체”에 대한 것입니다. 이 실체 없이 성추행 고충을 이유로 한 부서이동요청은 상사에 대한 근거없는 모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실테니 당연히 증거제시가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실체를 우리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이는 이 모든 사태를 한 순간에 정리할 수 있는 증거라고 봅니다. 공개제시에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셋째, 귀하의 성추행 고충 호소에 대한 서울시장 비서실의 구조적 묵살과 은폐에 대한 것입니다. 서울시는 이런 문제와 관련한 공식 매뉴얼이 존재하고 있고 그에 따른 처리방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법정 대리인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공식 절차와 구조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관련자들은 수사를 받았고 이후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습니다. 주장이 엇갈리면 입증력을 가진 증거로 사태를 판가름해야 합니다. 그저 말로만 하는 것으로 서울시 수장의 성추행 의혹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분명 없을 것입니다. 귀하께서는 그런 과정을 당연히 거치셨다고 봅니다. 그러니 이제 누가 답을 해야 하는지 그 순서는 명확해졌다고 봅니다.

4.

이후 또 다른 정황 관련 증언과 물증이 나왔습니다. 적어도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업무 인수관련 문서에 대한 것입니다. 내용은 귀하가 박원순 시장에 대한 자랑과 격찬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공식 문서에 성추행 의혹을 기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문서가 공식 문서라고 이해했는데, 개인이 작성한 사적 문건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성추행 피해 당사자가 썼다는 것으로서는 예상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혼란이 정리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는 결코 아닙니다. 4년간의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를 겪었다면, 그런 내용의 인수인계 문건은 후임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텐 데 걱정이 되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차원의 인수인계서라니까 성추행 피해 주장과는 배치되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셈이라고 보이니까요. 성추행 가해자에 대해 그렇게 칭찬일색으로 쓰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그렇다면 이 문건은 무슨 성격인지 잘 판단이 안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둘째, 시장실 구조에 대한 증언입니다. 저도 그곳에 여러번 다녀왔기에 알지만 박원순 시장의 투명 행정 철학이 있는데다가 시장실 구조는 옆에서도, 위에서도 그대로 보입니다. 그런 구조에서 법률 대리인이 주장했던 대로의 은밀한 성추행 행위가 가능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가능할까요?

셋째, 최근 유튜브 “열린공감TV”에서 공개한 영상에 대한 것입니다. 이 영상은 지난 2019년 3월 26일 시장실에서 박원순 시장 생일 파티 장면이 기록된 장면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영상이 어떤 장면들을 보여주었는지 당사자로서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영상을 본 분들은 우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귀하의 유쾌하고 친밀감 있는 성격에 방점을 찍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평소 귀하와 박원순 시장 사이의 스스럼없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4년간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하는 당사자로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인지는 의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질문의 핵심은 4년간의 지속적인 성추행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입증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증명해줄 내용은 여전히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뒤집는 반증정황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귀하로서는 별로 유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게 됩니다.

6.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저를 비롯한 적지 않은 시민들에게 여전히 고통이며 의문입니다. 그의 죽음은 "최종적 형태의 가해"라고까지 비난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동의하지 않습니다. 귀하도 그의 죽음을 가해라고 여기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죽음의 동기는 제3자가 명확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고통이 죽음보다 가볍다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건 상대화해서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다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리무중의 안개처럼 이어지는 것은 귀하에게나 고인이 된 박원순 시장, 그리고 이 상황을 감당하고 있는 모두에게 날이 갈수록 더욱 힘겨울 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7.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끝이 보일 거라고 믿습니다. 부디 용기를 내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건은 공개고발이 된 공적 사안이 되었습니다. 일방적 주장만으로는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사안입니다.

질문하는 것은 가해행위가 아니라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입니다. 이 노력 또한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존중으로 귀하는 더더욱 존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귀하의 답을 기다려도 되겠지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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