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만 기억하고, 정정보도는 안 읽고
대부분의 독자나 시청자는 최초의 보도만 기억한다. 이후 ‘바로잡습니다’ ‘사과문’ ‘정정보도’를 아무리 실어도 이 보도문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의혹만을 내세운 보도로 숱한 피해자를 양산한 경우도 많다. 실체적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의혹부터 파고들어야 하고, ‘의혹’이 먼 훗날 ‘진실’로 판명나기도 한다. 하지만 의혹이 그저 의혹일 뿐이라면, 즉 거짓 의혹이라면 의혹 보도는 명예살인이나 다름없다. 의혹 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정신적 상처는 말할 수 없이 크고 깊다. 그러나 이에 대한 피해보상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님 말고’ 식의 추측성 보도가 무분별하게 통용된다.
미국 등에서는 언론의 ‘사실 보도’에 대한 잣대가 엄격하다. 특히 ‘악의적 오보’로 판명나면 징벌적 손해보상제도를 적용, 엄청난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 미국에서 명예훼손 또는 악의적 오보에 대한 손해배상 비용은 평균 15억~20억원에 달한다. 배상액 때문에 언론사가 문 닫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인터넷 언론사 고커(Gawker)는 유명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과의 소송에서 패소해 문을 닫았다. 헐크 호건은 자신의 성관계 영상을 공개한 고커 측으로부터 정신적·금전적 위자료 1340억원에다 290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금까지 더해져 1630억원을 받아냈다. 영국도 상황은 비슷해 손해배상 문제로 문을 닫는 군소 언론사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법원을 통해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배상액은 대부분 2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언론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의 자정(自淨) 노력이다. 기사에서 우선시돼야 할 것은 ‘팩트’다. 속보 경쟁에 목매기보다 진실만을 공정하게 전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한국에는 90만명이 넘는 언론인이 있다. 가짜 기사를 양산해내는 펜은 펜이 아니라 칼이다. 피해자의 인격을 죽이는 살인도구 말이다.
위의 글은 제가 쓴 게 아닙니다. 2017년 2월, 조선일보 패밀리 주간조선에 실린 커버스토리로 실린 <아님 말고? 가짜 기사, 피해자만 남긴다> 기사의 주요 내용을 발췌하여 과장이나 왜곡이나 조작 없이 글자 그대로 옮긴 겁니다.
얼마나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언론이 과장, 왜곡, 조작을 일삼았으면 조선일보 패밀리조차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펜은 살인도구라 하고, 미국의 예를 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고 했을까요.
그러하니 민주당 의원님들, 조중동에 쫄지 말고 빨리 입법하세요. 언론이 경쟁적으로 살인도구를 휘둘러대는 세상에서 국민이 무서워서 살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