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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받기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해를 받기만 하려고 합니다.

적극적인 삶은 모든곳에 나를 투여 합니다.

이해를 못하는 사람은 마음의 벽에 갇혀 사는 사람입니다.

 

 

 

나는 어릴때 이해 받기를 좋아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나 자신도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기란 불가능 합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나를 사랑함에 있습니다.

이해란 머리의 언어가 아닙니다.

가슴에 언어 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타인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때로 이해가 안되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장단점 모두를 무조건 받아 들이는것에 있습니다.

 

 

 

 

 

 

이해를 머리로 받아 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오만 입니다.

머리로 사는 그대는 가슴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끌리는 대로 살아가는 탐욕일뿐입니다.

이해는 똑같은 상황과 환경도 다 다르게 느껴오는것 입니다.

이해를 못한다는 것은 자신만 느끼고 생각하는 것만 동감이 되었을때를 전제한 것이기에 때문에,

상대에 대하여 이해가 되지 않는것 입니다.

 

 

 

이해는 머리가 아닙니다.

이해는 똑같은 상황과 환경이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는 상대방의 부족함도 안아주는것 입니다.

나에 부족함이 많은 인간일수록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폭이 좁아지는것 입니다.

이해는 상대의 단점도 수용 하겠다는 마음에 결단 입니다.

이해는 상대를 수용하는 마음에 아픔인것 입니다.

 

 

 

 

나는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는 적극적인 삶을 생각 합니다.

결국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삶은 가슴이 애들을 벗어나지 못하는것 입니다.

세상을 가진자들이 사람들의 가슴을 이해못하는 것은 그들이 가슴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이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만들뿐입니다.

사람들은 노욕을 두려워해야 함을 경고 합니다.

노인들이 욕심이 더 많아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져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노인 그대가 처음처럼 천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맞으면서 처절한 싸움을 하며 그대의 몸은 비틀어져 있을것 입니다.

그대 삶을 말하고 있는것 입니다.

비틀어진 시신은 이해가 아니었음을 말해줄것 입니다.

죽음도 받아 들이는 이해의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