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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며칠 전 한 법정에서 판사가 낭독한 판결문이 화제가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 조성필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동료 직원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 공무원 A씨의 1심 선고공판에서 이 사건의 피해자 B씨가 박원순 전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A씨의 선고공판에서 난데없는 박원순 성추행 판단이 나오자 방청객들은 술렁였다. 재판부가 이같은 판단을 내리게 된 배경에는 피고인인 A씨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다. B씨는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이자 A에게도 성폭행 피해를 당한 인물이다. 그는 A씨에게 성폭행당한 후 6개월 동안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었다며 A씨를 고소했는데, A씨는 그 장애가 자신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B씨가 PTSD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문서제출명령을 내리고, 병원 상담내역을 받아 살펴봤다. 그리고 해당 상담 내역을 바탕으로 박원순 전 시장이 성추행을 한 것이 사실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조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박 전 시장의 자세한 성추행 내용을 낭독했다. 피해자가 박 전 시장 비서실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1년 반이 지난 후부터 박 전 시장이 적절치 않은 문자와 사진을 보냈고 '남자를 알려주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런 진술에 비춰보면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보면 뭔가 A씨의 주장이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 B씨가 박원순의 성추행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하나, 이같은 사정을 피해자 외상 후 스트레스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없고, 피고인의 범행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는것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조 부장판사는 박원순의 성추행을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재판부의 판단을 법률 용어로 '사실인정'이라고 한다. 재판에서는 우선 실체적 사실관계를 가리고, 그에 비추어 한 쪽의 위법행위가 있었는지를 가리는데, 여기서 실체적 사실관계가 무엇인지를 판사가 사실인정을 통해 결정한다. 똑같은 법을 적용하더라도 판사가 사실인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재판의 결과가 180도 바뀌기도 한다.

피해자 B씨의 병원 상담 내용은 일종의 피해자 진술이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피해자 진술은 직접증거가 될 수 있다. 단 판사가 그것을 직접적인 증거의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조 부장판사가 박원순 재판이 아닌 재판에서 왜 박원순의 성추행을 사실이라고 인정했는지는 모르겠다. 판결 논리에 따르면 어차피 그 대목에 대한 사실인정과 관련없이 피고인의 범행이 피해자 PTSD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판단했을텐데 말이다.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아마도 재판부는 '박원순이 성추행을 했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오늘 법정에서 낭독한 내용은 판결문 전문이 아니라 요약본이었다. 해당 판결의 주요한 내용을 전하는 판결 요약에 박원순의 자세한 성추행 내용까지 꼭 넣어서 법정에서 낭독해야겠다는 판단을 재판부가 내렸다는 얘기다.

판사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사실인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는 판사사회에서도 심심치않게 나오는 지적이다. 1, 2심의 사실인정이 달라진 사례를 묶어 판사들이 이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는 논문을 낸 판사도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이 워낙 우리 재판의 핵심인 부분이라 판사가 알아서 잘 해주길 바라고 맡기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뾰족한 방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례는 판사가 맡은 재판 본안도 아닌 별건에 대해 사실인정을 하고, 법정에서의 낭독을 통해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시민들은 이 사례를 통해 스스로 자문해야한다. 누가 저 판사에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 권능을 줬는지 말이다.

박원순 전 시장이 진짜 성추행을 했는지, 물적 증거가 있는 등을 두고 그동안 지리한 논란이 이어졌다. 나는 피해자가 없는 성추행을 지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피해자 변호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가지고 있다고 공언한 직접 증거(문자 내역)을 왜 공개하지 않고 피해자를 계속 고통스럽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일부 기자들이 여과없이 이 재판 내용을 받아쓰면서 마치 법원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증거를 통해 박원순의 성추행을 사실로 판단한 것처럼 보도됐다. 그러나 해당 판사의 사실인정은 박원순의 성추행 여부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법적 권능이 없다. 사실 위에 적은 맥락을 보면 어느정도 사심이 반영된 무리한 사실인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 정도다. 상세한 근거가 담긴 판결문 전문은 공개되지도 않는다. 자기 의견은 그냥 인터넷 게시판에 쓰면 된다. 판사라고 해서 이런 식으로 법대에 앉아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결국 이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같은 맥락을 적당히 제거하고 이 소식을 옮긴다면 그건 당신의 화를 돋우고, 그 화를 이용하기 위함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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