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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요훈기자

자기부정의 늪에 빠진 조선일보

인사혁신처도 사찰 자료를 구매한 거 아니냐. 엥? 이게 뭐지?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아니다. 왜곡과 조작이 금도를 넘었다.

조선일보의 논리와 주장은 이런 거다. 인사혁신처가 법률신문과 주요 언론사들이 제공하는 법조인 인물정보를 유료로 열람하는데, 그 정보가 대검 수사정보 수집부서에서 수집한 판사들의 ‘사찰’ 정보와 뭐가 다르냐는 것이고 인사혁신처도 돈을 내고 ‘사찰 정보’를 구매할 거 아니냐는 것이고, 그러하니 윤석열은 잘못이 없다는 거다.

이쯤 되면 확증편향이 도를 넘어 중증의 질병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언론사들이 제공하는 인물정보에 나이, 성별, 학력, 경력 외에 성향이 어떻다든가 누구와 인척이라든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라든가 하는 등등의 기분 나쁜 '사찰'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가. 언론사들이 법조인들을 사찰하여 얻은 정보를 공개적으로 팔고 있다는 것인가.

조선일보의 ‘윤석열 일병 구하기’가 눈물겹다. 지푸라기를 잡아 철갑의 구명정으로 왜곡하고 조작하여 독자들을 홀리고 속이려 한다. 아니 지속적으로 세뇌시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몸부림이 애처롭다.

궁금하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이런 기사를 쓰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데 위에서 시키니까 그렇다고 기사를 쓴 걸까. 아니면 기자가 쓴 기사를 위에서 의도에 맞춰 각색한 걸까.

확증편향의 포로가 되어 자기부정의 늪에 빠진 조선일보, 앞으로 조선일보 기자들은 취재가 아니라 사찰이고, 기사가 아니라 사찰보고서라고 용어를 바꿔 쓰기 바란다.

 

 

 

룸싸롱에서 울려 퍼진 경고음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히 민주주의가 정착된 선진국가로 갈수록 상상도 못하는 절대적인 독점 권한을 가진 한국의 검찰. 수사권, 기소권, 영장청구권에 기소를 하여 벌을 줄지 말지를 검사의 재량에 맡기는 기소편의주의까지, 한국의 검찰이 가진 칼은 가히 절대적이다. 산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천사를 악마로 만들 수도 있고 악마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거 빼놓고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집단이 한국의 검찰이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지 않은 문외한이나 기소편의주의란 검사의 재량권을 인정하여 경직된 법집행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를 최소화하려는 취지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검찰에선 어떤가. 똑같은 혹은 유사한 잘못을 저질러도 누구에게는 칼을 들이대고 목숨마저 위협하지만 정작 같은 검찰 식구이거나 검찰에 우호적인 개인과 집단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그건 기소편의주의가 아니라 ‘내맘대로 기소' 또는 '엿장수 맘대로 기소’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 검찰에서 법 앞의 평등은 작동하지 않는다.

검사 아닌 공무원들이 룸싸롱에 가서 중대한 사건의 핵심인물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면 검찰은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언론에 흘려 부정부패 공직자로 여론재판을 하고 이어 투명한 공직사회를 위하여 엄정한 법집행이 필요하다며 기소를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검사들이 룸싸롱에 가서 접대를 받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속이 뻔히 보이는 꼼수로 불기소를 하고 조삼모사로 국민을 속이면서도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이현령 비현령,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법집행을 하는 검찰을 어느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상황에 따라서 상대에 따라서 조직의 유불리에 따라서 법집행이 오락가락하는 검찰을 어느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남들에게는 잔혹하게 법집행을 하면서 정작 자기 식구들에게는 조폭이 조직원 보호하듯 감싸는 검찰을 어느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그런 검찰을 신뢰할 수 없어 공수처를 설치하는데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면서 조직이기주의에 도취되어 집단행동을 하는 검찰공화국의 검찰을 어느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룸싸롱 접대 받은 검사 불기소, 검찰이 갖고 있는 독점 권한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분산하라는 경고음이다. 검찰을 이대로 방치하면 돈 없고 빽이 없거나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국민은 언제든 누구든 무소불위 권한을 독점한 검찰로 인하여 억울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바로 그 경고음. 그렇지 아니한가.

 

 

 

친검무죄 반검유죄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라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탈주범’ 지강헌의 명언이지요. 그는 교도소 이송 중에 동료 죄수들과 탈출에 성공하여 경찰의 검거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 서대문구의 어느 가정집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인질극을 벌이던 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 저는 초년병 기자로 인질극의 현장에서 몇 미터 거리를 두고 지강헌의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당시 34살이던 그는 세상에 불만이 많았지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그때 그가 했던 말입니다. 이런 얘기였습니다.

나는 나쁜 놈이다.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그런 성장과정에서 나쁜 길로 들어섰다. 남의 걸 훔치고 싸움질을 하고 그러다 교도소에 갔고, 출소한 뒤에는 전과자로 살기 힘들어 동네 건달들과 어울려 무전취식을 하고 푼돈을 뜯고 행패를 부리다 또 교도소에 갔다.

그게 반복되면서 나는 경찰에서도 검찰에서도 법정에서도 교도소에서도 인간 쓰레기 취급을 받았고, 전과가 늘어나면서 형량은 점점 높아졌고, 그리하여 17년을 교도소에서 보냈고, 사회에서 격리해야 하는 흉악범이 되었다.

그런데 교도소에 있을 때 보니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나 같은 개털은 쓰레기 취급을 받는데, 돈도 있고 빽도 있는 범털들은 교도소에서도 칙사 대접을 받더라. 나는 동네 건달이고 나로 인한 피해자들은 동네 식당 주인 등 몇 명이 되지 않지만 수십 억 뇌물을 받아 먹은 자는 수많은 국민이 피해자인데 교도소에서도 호사를 누리는 떵떵거리더라.

나는 교도소에서 17년을 썩었는데 그네들은 몇 년을 선고받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석방이나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더라. 나는 돈 없는 무전이라 유죄이고, 돈 있고 빽 있는 그네들은 유전이라 무죄더라. 나는 이런 세상이 싫다. 교도소를 탈출하여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하고 싶었다.

인질극을 벌이던 가정집의 담장 위에 앉아 지강헌을 얘기를 듣는데 숙연해더군요. 어쩌면 지강헌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기자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저에게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한 첫 제보자인 동시에 리얼한 세상을 가르쳐준 첫 스승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침에 인터넷으로 뉴스를 뒤적이다가 문득 지강헌이 떠오른 건, ‘국민의 짐’으로 불리기도 하는 국힘당이 공수처 출범에 반대하면서 ‘친문무죄 반문유죄’라고 써 붙인 사진을 봤기 때문입니다. 국힘당 원내대표 주호영씨는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젊은 판사였는데, 그가 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목소리를 높였는지 그 배경을 잘 모르나 봅니다. 아니면 세상사에 관심이 없거나 세상 물정에 어두운 판사였거나...

친문무죄가 아니라 친검무죄라 해야 옳지 않을까 합니다. 반문유죄가 아니라 반검유죄라 해야 옳지 않을까 합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도 탈탈 털리고 기소를 당하고 청와대의 참모들도 탈탈 털리고 기소를 당하는데, 국힘당의 나경원도 박덕흠도 탈탈 털렸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듣자하니 국힘당의 상당수 의원들은 집값 폭등을 부추긴 법안에 찬성하였고, 그래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부동산으로 떼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얼굴에 핏발을 세우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던 지강헌은 이렇게 절규했었지요.

나는 나쁜 놈이다. 벌을 받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큰 죄를 지은 자들은, 나는 꿈도 못 꾸는 규모의 검은 돈 부정한 돈을 만지는 자들은,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나는 저지를 수도 없는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나는 몇 명에게 피해를 주었지만 부도덕한 재산 불리기로 불특정의 수많은 국민을 피해자로 만든 자들은, 왜 벌을 받지 않느냐. 나 같은 개털에게 법은 잔혹하면서 돈 있고 빽 있는 범털들에게 왜 법은 관대한 것이냐.

지강헌이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이젠 어느 고사성어보다도 널리 쓰이는 일상어가 되었고, 누구나 그 말을 쓸 수는 있으나, 원작자의 취지에 어긋나게 의미를 왜곡하여 오남용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지금은 검찰과 친하게 지내는 친검은 무죄요,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반검은 유죄라고 해야 옳습니다. 1988년에 탈주범 지강헌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을 메운 '이게 나라냐'는 함성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추가. 지강헌과 탈주 동료들은 몇몇 가정집에 들어가 숙식을 해결하고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외눈박이 검찰, 외눈박이 언론

수사권을 가진 검찰은 수사할 일이 있으면 주저함이 없이 수사해야 하고, 수사할 일이 아니면 함부로 칼을 휘두르면 안 된다.

그런데 검찰이 정치적인 이유 또는 검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누구를 손 좀 봐주려고 수사권을 휘두른다면 권한을 오남용하는 불법이고 범죄가 된다. 검사들의 밥그릇을 키우고 지키기 위해 또는 검사 자신의 영달이나 돈벌이를 위해 수사권을 휘두른다면 검사가 아닌 저질 깡패가 된다.

기소권도 마찬가지다. 기소할 만한 일이면 주저함이 없이 기소해야 하지만, 그럴 일이 아닌데도 정치적 이유나 검찰 조직 또는 검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소권한을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오남용하면 검사가 아니다. 그 순간 검사는 조폭 집단의 조직원이 되고, 길 막고 통행세 뜯어먹는 양아치가 된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고 법집행은 공정해야 한다. 피해자가 있다는 건 가해자가 있다는 거다. 검찰이 수사권, 기소권을 오남용하는 건 죄를 지어 벌을 받을 놈에게 특혜를 주는 면죄부 장사를 하는 것이고, 법의 보호를 받아야할 선량한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된다.

언론이 하는 일도 그렇다. 언론이 공정하지 못하여 독자들에게 일그러진 창으로 세상을 보여주면 여론을 오도하게 되고 결국 절대 다수의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 한 눈을 감고 운전을 하면 그 차는 도로를 위협하는 폭탄이 된다.

지금 우리의 다수 언론은 어떠한가. 어떤 언론사는 10명의 서울대 교수(그 중의 9명은 익명)가 윤석열 징계 회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고 대서특필하면서 천주교 사제와 수도사 3,951명의 검찰개혁 촉구 성명은 애써 외면한다. 그게 공정한 태도인가.

언론은 여론조사를 보도함에 신중해야 한다. 공신력을 부여하기 어려운 아무 조사나 보도하면 여론을 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보도할 때는 누가,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방법으로 조사를 했고, 표본수는 얼마나 되고 오차범위는 어떠한지 기사에 반드시 반영하여야 한다.

스누라이프라는 서울대 동문 온라인 게시판에서 ‘자랑스런 서울대 동문’ 조사를 했더니 윤석열씨가 1위를 기록했고, 윤희숙 금태섭 진중권 안철수씨가 차례로 뒤를 이었다고 한다. 거의 모든 매체가 그걸 기사라고 내보냈는데, 그 조사는 신뢰할 만한 조사인가. 그 기사는 언론의 윤리에 부합하는 기사인가.

서울대 동문 게시판의 신뢰가 의심스러운 조사는 대서특필하면서 이 나라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한 서울대 민주동문회의 검찰개혁 촉구 성명은 보도하지 않는 언론사는 공정한가, 언론이라 칭할 자격이 있는가.

검찰에게도 언론에게도 가장 큰 문제는 ‘직업윤리 실종’이다. 검찰개혁은 검사들에게 ‘직업윤리’를 장착해주는 것이고, 언론개혁은 기자들에게 실종된 ‘직업윤리’를 찾아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남이 애써 찾아주는 것이니 고마운 줄 알아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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