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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교수

왜, 검찰 개혁이 필수적인가?

0.

저는 평범한 시민이요, 그런 제 입장에서 보면 검찰개혁이 한국사회를 바꾸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유를 네 가지만 설명하겠습니다.

1.

첫째, 검찰은 재벌의 독점적 이익을 옹호하는 핵심세력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진리를 아실 것입니다. 모든 사안이 결국은 법원에서 판결로 결정되는데 그 기준이 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나라에서 일체의 사건은 기소권이 검찰에게만 있습니다. 그들이 눈을 감아주면 천하의 몹쓸 도둑도 안전지대에 있어요. 반면에 그들 검찰이 문제 삼으면 누구라도 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고위 검찰 출신의 변호사들이 예우를 받으며 법정에 나아가,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시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2.

둘째, 검찰은 언론과 한 통속이 되어 한국사회를 들었다 놓았다 자기네 마음대로 흔들어댑니다. 이번에 어느 장관의 임명 사태에서도 똑똑히 보았습니다.

국회에서 청문회가 진행되자 그 장관 후보자(조국)의 배우자를 검찰이 기소했습니다. 그가 자신들의 상관으로 임명되기가 무섭게 검찰은 압수영장을 무려 70개나 발부 받아, 장관일가에 대한 마녀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일 동안(2019년 9-10월) 검찰은 모든 매체를 쥐락펴락하는 신공을 보였습니다. 이른바 좌파 성향의 언론마저도 그들의 시녀처럼 움직였습니다.

도대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검찰을 상대로 싸우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3.

셋째, 한국의 검찰은 그 조직 구성이나 운영방식이 큰 문제입니다. 너무도 비민주적입니다. 최근 양심적인 몇몇 내부고발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말하기도 두려울 정도입니다.

검찰은 내적으로는 상명하복의 원칙이 극히 엄한 조직입니다. 일부에서는 '깡패조직'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독재 정권 아래서 뼈대가 굵은 조직이라서 그런지, 검찰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멉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검찰조직은 과거 한국사회의 칠흑같은 어둠과 부조리의 늪에 빠져 있는 듯합니다.

4.

넷째, 검찰은 기득권 세력의 가장 든든한 보루입니다. 사회 곳곳에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지마는, 검찰처럼 심한 집단이 없습니다.

현재 국회의원의 면면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검찰 출신의 여러 의원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가장 수구적인 세력입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죽을 때까지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특권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한때 신문지상을 요란하게 만들었던 제주도의 검사장이 생각납니다. 그는 대로변에서 태연히 자위행위를 벌여 시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건마는 그는 지금도 멀쩡하게 변호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검사는 우리사회의 영원한 특권층이란 말입니까.

검사 조직 내부에서 이름이라도 조금 얻은 인사라면 손쉽게 정계에 진출하여 국회의원도 되고 장차관에 국무총리까지 됩니다. 그래 가지고서 세상을 자기네 마음대로 요리합니다.

그런 점에서, 검찰 조직 및 그에 속했던 인사들이 한국사회의 개혁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일치단결하여 자기네 특권이 손상되는 일이라면 쌍수를 들고 반대합니다. 우리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수구적 태도입니다.

거꾸로 봅시다. 상황이 이처럼 비극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검찰 개혁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검찰조직문화의 혁신이 없이는 우리사회를 더 이상 민주적으로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5.

오늘도 많은 시민들이 검찰 개혁을 힘차게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시민의 요구가 쉽게 받아들여질지 확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70년 동안 특권을 누려온 최강의 권력자들이 보잘 것 없는 민주시민의 외침에 귀를 기울일 리가 없습니다.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못해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변화란 늘 무망한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절망이 곧 성공의 시작일 때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검찰이 민주적으로 완전히 개혁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절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눈에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큰 꿈이 곧 우리의 현실로 바뀔 것입니다.

물만 가득 담긴 큰 독에서 향기로운 포도주가 끝없이 우러났던 2천 년 전 유대 땅의 어느 결혼식 풍경이 생각납니다.

#검찰개혁

#윤석열_아웃!

#한국사회_바꿔라!

사족: 이 글은 지난 2019년 10월 5일 페북에 올린 글의 한 토막입니다. 지금(2020. 12.8) 보아도 틀린 설명 같지 않습니다. 지난 14개월 동안 우리 사회는 검찰개혁이란 과제를 풀지 못했습니다. 이제 청와대와 민주당은 명확한 결과를 내놓기 바랍니다. 더 이상 지지부진, 우왕좌왕하지 말고 한국사회의 암덩어리를 수술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바랍니다. 추미애 장관을 적극적으로 도와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시민은 등을 돌리고 말 것입니다. 백승종 삼가

 

 

 

 

<다시개벽> 창간호

1.

우리 시민이 모르는 사이에 새 잡지가 창간되었지요. 2020년 겨울에 “모시는사람들”에서 그 옛날 일제강점기의 희망이었던 잡지 <<개벽>>을 복간하였답니다. 실로 100년 만의 일입니다. 당초 <<개벽>>은 1920년 창간되어, 그 시대 인류가 처한 위기를 조선인(한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우리 나름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려 애썼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역사적 혼란 속에 빠져 있는데요. 《다시개벽》은 인류사적 반성의 토대 위에 선다고 선언합니다. “남성-이성애-서구-성인-자본가-인간” 중심의 역사를 청산하려고 노력한다니,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2.

<<다시개벽>은 다음의 네 가지 지향점을 천명하였습니다. 하나하나가 뜻이 있는 시도라 여겨져 그대로 적어보렵니다.

“첫째, 서구 이론에 의존하는 한국 인문학 담론의 현실을 비판한다.

둘째, 한국 인문학계에서 자생적 사유를 시도했던 흔적을 재검토한다.

셋째, 지구 생명의 전면적인 위기를 야기한 인간-이성-민족-국가 중심주의로부터 포스트휴먼의 사유, 지구적 사유, 민족-횡단적 사유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넷째, 한국 자생 사유가 창조적 주체성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인류사적 위기 극복을 위한 세계적 보편성까지 갖추고 있음을 다시개벽의 관점에서 해명한다.”

3.

이번에 나온 창간호는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고민한 것으로, 책의 부제를 “서구 근대 백여 년에 운이역시 다했던가”라고 하였어요. 책에 실린 여러 글을 거두절미하고 간단히 요약해 봅니다.

- 조성환은 『개벽』 창간호를 검토하여 그 당시 이 잡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는지를 살폈습니다.

- 김정은은 우리 학문의 식민성을 비판하기 위해 조한혜정의 책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를 뜯어봅니다.

- 조한혜정은 삶과 앎이 통합될 때만 삶이 재미를 회복한다고 주장합니다.

- 홍승진은 현실의 고통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려면 서구 이론에 매달리면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 방민호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도 서구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며,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 차은정은 서구 근대의 우주론을 벗어나 영성(靈性)의 세계를 인정하는 우주론을 찾고자 노력하지요.

- 성민교는 ‘중심’의 해체를 통해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 김춘규는 목적과 수단이 뒤집힌 서구적 지식을 추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합니다.

4.

이번에 나온 <<다시개벽>은 우리 시민을 새로운 지적 도전으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서구의 합리적 세계관을 탈출하여 “세계의 재주술화”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문제만 있지, 시원하게 답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혹자는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세계의 재주술화는 인간 중심의 자연 지배 방식으로는 더는 인류가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류가 일만 년 전 채집 수렵의 원시생활을 하던 때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은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21세기다. 이제 우리는 인간 아닌 것들로부터 미래의 철학을 모색해야 하겠다.”

 

 

 

 

 

언론에 휘둘리지 말자.

1.

2020년 현재 한국 주류 언론의 공신력은 0점입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언론의 반응을 보며 속을 태우거나 불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2.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들은 "진실"을 보도하기보다는 소수 지배층의 요망사항을 마치 사실처럼 꾸며대기가 일쑤입니다. 제가 지금 정말 사실에 근거해서 이런 주장을 펴느냐고요? 물론입니다.

3.

제 주장을 입증하는 뚜렷한 근거를 대겠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은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6년 12월 3일, 지금부터 꼭 4년 전, 제가 페이스북에 쓴 글입니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도 주요 언론은 거짓을 일삼았고, 정치권은 오락가락했습니다. 그 실상을 당시 저는 간단명료하게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절대로 저 잘난 척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눈을 똑바로 뜨면 다 알 수 있는 상식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실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네버엔딩 스토리"입니다. 부디 속지 마십시오.

다음: 아래는 4년 전의 글로 지금의 제 주장을 증명하려는 작은 시도입니다.

영웅들의 비상(2016. 12. 3)

1.

오늘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6차 범국민행동>의 날이다(2016.12.3.)

한달 넘게 비상시국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판이 몇 번이나 뒤집어졌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 새벽 4시, 박근혜의 탄핵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언론은 탄핵안의 통과를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2.

그러나 탄핵안의 부결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시민이 이미 박근혜의 죄상을 알고 있고, 그리하여 그를 대통령직에서 해임시키기로 하였는데 무엇을 겁내는가? 이른바 '비박'으로 불리는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에게 표를 구걸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이 시민들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이 정답이다.

정치는 결코 술수가 아니다. 국민의당 박지원을 비롯한 일부 정치가들은 '현실성'을 내세우며 공범자들인 '비박' 측과 공조를 기도했다. 그것이 가장 잘못된 일이었다. 박지원 등의 구걸로 인해, 비박들은 마치 자신들에게 무슨 대단한 권리라도 있는 양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인다. 그 우두머리인 김무성과 황영철 등의 안하무인과 조변석개(朝變夕改)는 이맛살을 찌뿌리게 한다.

부결시키려거든 그렇게 하라. 우리들 시민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탄핵의 횃불을 불사를 것이다. 이번 회기가 바뀌면 탄핵안은 얼마든지 재상정할 수 있다.

3.

시간이 흘러갈수록 전선은 더욱 뚜렷해진다. 박근혜와 이정현은 물론이고 박지원과 문재인, 안철수, 추미애와 우상호 등은 아직도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썩은 제도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요, 시간이 갈수록 시민들과 그들의 간격이 확인될 따름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시민의 진정한 대표가 누구인지도 뚜렷해진다. 우리 곁에는 이재명 시장이 있고, 표창원 의원도 있다. 6주째 전국을 휩쓸고 있는 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정한 우리의 지도자들이 부상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천명(天命)이다. 불법과 부패의 늪에서 시민과 우리의 국가공동체를 구원할 이들이 부상한다. 역사를 보라. 난세는 반드시 시대의 영웅을 불러내기 마련이다.

4.

미국과 일본은 지금의 사태를 우려의 눈빛으로 지켜본다. 그들에게 박근혜 정권은 얼마나 다루기 쉬운 먹이감이었던가. 미일 양국은 박근혜의 추락에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며, 양심적이고 자주적인 정치세력이 한국에서 집권에 실패하기를 염원한다.

그들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국의 재벌과 기득권층들도 보수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 걸음 앞으로 밀어내기가 결코 수월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시민들은 꿈을 잃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공정한 사회, 건강한 미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들 자신의 삶이 걸린 절실한 문제라서 포기할 수가 없는 일이다.(끝)

 

 

 

 

<중용>과 생태주의

우리가 사는 지구의 환경은 지나치게 파괴되었다. 사회정의도 실종되어,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공멸을 염려하는 단계가 되었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지구온난화와 이산화탄소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날이면 날마다 우리는 미세먼지를 걱정하고, 오염된 지하수와 농약 묻은 먹을거리를 두려워한다. 산업화가 고도화될수록 실업률은 더욱 높아가고, 계층 간의 소득 차이도 갈수록 벌어진다.

이제 새로운 우주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외침도 여러 곳에서 들린다. 인간 중심의 사고는 오래전에 한계를 드러낸 상태다. 이대로라면 인간은 결국 지구의 파괴자로 전락하고 말 가능성이 적지 않다.

『중용』에 따르면, 하늘과 땅, 만물과 사람은 하나로 연결된 존재다. 그런데 우주만물에는 어디나 불가분의 도리가 있다. 인간이 이 도리를 깨쳐 정성껏 실천에 옮기면 천지만물이 제자리를 되찾고, 천지와 함께 평화를 누리며 사물을 온전히 기를 수 있다. 『중용』은 그렇게 주장한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진정한 인간이 그립지 않은가.

『중용』이 선언적으로 명시한 사고방식을 내면화한 이가, 20세기 후반의 한국 사회에도 존재하기는 했다. 무위당 장일순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한 알의 곡식에 우주가 담겨 있다고 천명했다. 그의 길은 최시형의 발걸음을 따른 것이었다. 노자와 공자, 예수와 부처의 길도 그는 아울러 실천하려 했다고 생각된다.

장일순은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하나로 융합한 것,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사상을 길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장일순이 서슴없이 나아간 그 길은, 일찍이 유영모와 함석헌이 개척한 인생의 새 길과도 별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중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사람들이었다. 이로써 평화와 생명운동이 출발할 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지난 2천 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하게 다가온다. 『중용』은 위기의 시대마다 늘 새롭게 해석되었다는 점이다. 21세기라고 무엇이 크게 다를까. 새 시대의 중용 해석은 소수의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모든 이의 평화를 위한 헌장을 되새기는 작업일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길에서 멀리 벗어난 평범한 시민이요, 역사 저술가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여러분 가운데는 새 시대를 이끌 웅혼한 정신과 강한 실천력을 지닌 분들이 많을 줄로 믿는다.

출처: 백승종, <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사우, 2019); "세종 우수교양도서" 선정(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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