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몸을 사용하더라도 노동과 상품화된 몸 간의 본질적 차이는 대상인 몸에 대한 존중도 한 측면이라 생각하는데, 여성 차별 금지와는 달리 여전히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반대하는 이들은 다수 내지 일반적이라는 잣대로 소수에 대한 인간 존중마저 저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 어떤 인간도 상품이어서는 안되며, 그렇게 바라보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착취다.
오늘 사회대 여성학 협동과정에서 있었던 Gupta 교수의 Gender and solidarity란 강연은 내게 생각 거리를 남겼다. 그동안 다른 나라의 특수 상황으로만 생각하던 대리모와 난자 매매의 국제적 심각성과 구조화된 국제간 착취는 나의 무지 탓이기에 보다 관심을 지니고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자궁을 빌려주는 대리모와 매춘이라고 불리는 성노동 간의 애매모호함이 나 개인의 문제로서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현실에서 사회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억압과 착취 구조가 존재하기에 성매매 반대 입장이지만, 원론적으로 성에 대한 억압과 편견을 제거한다면 성노동도 몸을 이용한 기타 다른 형태의 노동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대리모라고 하는 자궁을 사용한 행위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지극히 개인적 입장 정리다; 평소 막연히 (긍정적) 노동-성노동 vs 대리모-난자 매매- 장기매매 (부정적)이었는데...
노동 제공에 있어서 몸 사용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의 범위 내지 경계선 문제일 수도 있으나 (손발에서 성기, 그리고 자궁으로 확대), 아이는 태반을 통해 여성과 일체화되기에 대리모는 노동으로서의 몸의 단순제공으로 보기 어렵다고 일단 정리해 본다.
물론 단순히 노동과 몸이 아닌, 생명윤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태어나는 아이와 더불어 여성의 심리적 유대감 등을 포함해 오히려 좀 더 쉽게 선을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옳고 그름을 떠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늘 존재하는 몸의 상품화와 착취의 순환 구조가 항상 사회약자인 빈곤층 여성에게는 더욱 큰 무게가 된다는 비극적 현실. 잡혀있던 점심약속도 안가고 끝까지 듣게 된 강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