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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욱

[모순의 폭발]

예전부터 한국사회의 문제점은 상당부분 그릇된 학벌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왔다.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워 배곯지 않고 설움당하지 않는 출세와 성공을 꿈꾸던 시절, 과거급제의 추억과 '금의환향'으로 표현되는 성공신화는 그대로 세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어 소위 'KS 마크'라는 말이 공산품을 넘어 사람의 품질을 형상하는 단어가 되었던 때가 있었으니 말 다한 것이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학생을 가르고, 성적의 우열이 곧 '모범생'과 '문제아'라는 말로 그대로 등치되는 모순이 생겼다. 시험보는 재주가 좀 있다 하여 성적 면에서 선생님이 보기에 모범일지 모르나, 모든 면에서 '타의 모범'이 될 수는 분명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같은 걸로 여기며 강요하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니 공부를 잘하면 반장이 되고, 선생님으로부터 동료 학생들에 대한 체벌권까지 대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는 일까지 생긴다. 그렇게 굳어진 사고방식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어떤 상황에서든 특별한 대우를 받는게 당연하다는 비정상적 사고로 굳어진다. 하물며 열등생과 문제아가 자신과 같은 반열에 놓이는 걸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어 고시제도를 통과한 법조인과 공무원들은 권력자에 굴종하고 시민들에게 군림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서부터 시험성적을 통해 부여받은 특별대우가 사회생활에 그대로 이어지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선생님은 권력자로 등치되며 자신은 매를 손에 든 반장이 되어 공직자로 일하는 것이다. 그러니 군사독재 아래에서 민주주의가 숨쉴 공간을 넓히는 일에 그토록 큰 희생이 따랐다.

모범생은 선생님 말을 잘 듣는 것이고, 그래야 우등한 것이니 권력자에 대항하며 시키는대로 따르지 않는 불량학생은 열등생으로 처벌을 받는게 당연하다 여기는 자들이 많았다. 민주공화국을 외쳤으나 그 속에 사는 '시민' 보다는 여전히 '신민'이 많았던 것이고, 그 잔재들은 무지하고 무도한 자들을 선동하며 광화문 광장에 모여 전염병의 숙주 노릇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낳은 과거 '중인' 계급의 탈역사적 신분상승은 '군자'의 덕성과 수양을 수반하지 않은 채로 법률가와 의료인을 '엘리트'로 간주하는 속단과 편견으로 이어졌다. 대의명분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안정을 추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던 과거 유교적 신분사회 속의 중인들이 새로운 직업윤리와 철학을 정립하지 못한 채 식민사회를 거치며 느닷없이 사회의 상층부로 진입하니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사회에 해를 끼친다는 게 그간 내가 정립한 '개똥철학'에 따른 분석이다.

그러니 입시성적 하나로 평생을 울궈먹는 사람들이 엘리트 대우를 받으며 지배층을 형성하고, 속물임에도 속물이 아닌 것처럼 가장해왔던 시절이 길게 이어졌던 것이다. 입시 통과 후론 지적, 인격적 성숙이 없어도 사회에서 일정한 트랙을 보장 받을 수 있었으니 비극은 깊어진다. 지금은 얼추 60대 이상이 된 소위 명문고 세대의 사람들이 동창회에 모여 앉아 서로 10대 시절 성적을 따지는 유치한 현상과, 출신 고등학교가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행세하는 희극의 슬픔을 본인들은 결코 깨닫지 못한다.

뜨내기 지식인과 얼치기 엘리트의 비뚤어진 자부심은 많은 정보가 공개되고 투명하게 유통되는 세상에서 그 민낯을 드러내 점차 사회문제가 되고 공동체의 짐이 되고 있다. 그간 누려온 특권에 수반되는 반칙을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열매라 간주하니, 그 반칙을 지적하는 건전한 비판도 열등생의 시기나 질투로 받아들일 뿐이다.

인생의 유일한 성취가 시험성적인 법조인들과 학자, 언론인들이 제대로 된 사회적 사명을 다하지 못하니 개혁과 조소의 대상이 된 것이고, 이번 사태에서 의사들이 나름 그토록 억울해하며 정부에 대한 성토를 하는 와중에도 자꾸만 대중의 지지와 정서를 배반하는 덜컥수를 두는 것도 결국 그 뿌리는 같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의사단체에서 만들었다 황급히 철거했다는 카드뉴스에 등장하는 '전교 1등' 운운의 사고방식이 너무도 한심하고 부끄럽다. 그런 의식수준으로 어떻게 이 복잡한 사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똑바로 전달되어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지 안타깝고 딱할 따름이다.

이제 정말 우리의 위기와 결점을 솔직히 드러내 성찰해야 한다.

입시성적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일을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지, 왜 이번 사태에서 의사들을 그토록 이기적이라 비난하면서도 내 자식은 의대에 가는게 좋겠다며 학원에 보내 뺑뺑이를 돌려야만 안심이 되는 것인지, 그 지극한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

아직 갈 길은 너무도 멀다. 단 한번에 뒤집어 고치기엔 세상은 너무 크다.

생각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고쳐가며 좋은 생각을 넓혀가는 것, 그러면서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며 지치지 않는 것, 그 거룩한 연대의 끈을 더 단단히 부여잡을 일이다.

그래서 좋은 정치와 올바른 지도자가 필요하다.

속물들을 철저히 가려내려면 시민들의 눈도 좀 더 밝아져야 한다.

모든 것을 삼킬지도 모르는 태풍이 점점 다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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