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전교 1등 의사의 의미]
'하얀거탑'은 일본의 작가 야마사키 도요코가 1965년까지 연재한 소설 '백색거탑'을 마봉춘이 드라마로 재현한 2007년 작품입니다.
주인공들은 드라마상에서는 국내 최고의 의대로 나오는 가상의 대학 의사 두 사람으로, 외과 부교수인 장준혁과 내과 부교수인 최도영이데, 장준혁은 가난한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커서 정형외과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의 딸과 결혼했고, 최도영은 아버지와 형제들이 모두 의사인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 순탄하게 살아 온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장준혁은 현재 외과 과장이 곧 은퇴한다는 것을 알고 새 외과 과장으로 임명받기 위해 야심만만한 수술들을 계획하고 진행하면서 누구보다도 더 화려한 진료 경력을 쌓아가고, 경쟁자를 물리치면서 전교 1등의 습관을 재현합니다.
그리고, 갖가지 투쟁, 로비, 합종연횡 결과 결국 외과 과장이 됩니다.
그 후 더 큰 야심을 달성할 목적에서 VVIP 환자들의 어려운 수술을 맡기 위해 진료 스케줄을 마음대로 변경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주치의인, 가난한 폐암 환자의 증상을 과거력인 폐렴의 흔적으로 오진하는 사안이 발생합니다.
VVIP의 수술 자체는 성공하지만, 폐암 환자는 장준혁의 오진에 따른 악화로 사망합니다.
이후 후반부 10편은 장준혁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싶지 않은 의사 장훈혁의 위증교사 실패 등 몰락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최근 어떤 설문 조사에서 "학창시절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고 싶으냐"는 항목이 포함된 일이 있습니다.
그러한 질문을 보고, 전교 1등과 동기 중 최선두주자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온 의사가, 소수의 VVIP 환자와,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하고 평범한 환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극명한 대비가 나타난 이 드라마가 떠올랐습니다.
마취 분야만 하더라도 유사한 마취제를 두 개 이상 사용하거나 진통제와 혼용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체온, 체중, 신체 상태와 투여 수 시간 전 섭식 상태, 기왕증, 각 약품의 작용과 부작용 및 상호작용까지 모두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어야 하고, 매 순간 본능적으로 발휘되어야 할 만큼의사 선생님들(인턴 포함)의 학습 능력이 탁월하고 집중도가 높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암기력과 반복 학습을 통한 각인의 목적이 환자 치료가 아니라 환자에 대한 지배력을 이용해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라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민 환자들은 장준혁의 오진 대상이었던 환자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러한 마인드를 가진 의사 선생님들의 일부가 실명을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초심조차 없는 분들이 그간 헌신적인 의사 선생님들 사이에 섞여있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