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를 알려면 사람은 많이 배워야 한다,

2015. 10. 11. 07:23



진정한 현자는 무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회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수고와 탐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입니다.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를 알려는 사람은 많이 배워야 한다.




모르는 것을 남에게 묻는 것을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말라.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언제나 진실을 말하라.

학문을 배우고도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지 않는 사람은 모처럼 밭을 갈아 놓고 

씨앗을 뿌리지 않는 사람과 같다.





모든 것을 시험해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요.

그리고 악한 일을 어떤 종류인든지 멀리 하십시요.

우리의 영혼에는 양식이 부족한 일이 없다.그것을 섭취하는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참된 지혜는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이고,무엇이 그보다는 덜 좋은지, 따라서 무엇을 먼저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예지의 내용은 적극적이기라기 보다는 소극적인 것이다.

무엇이 불합리하고 무엇이 불법이며 무엇이 해서는 안 될 일인지를 아는 것이다.

지식은 위인을 겸허하게 하고,보통 사람을 놀라게 하며,소인배를 우쭐하게 한다.

2015. 9. 30. 08:26



오늘날 학문이라고 불리고 있는 지식은 인간 생활의 행복에 공헌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저해하고 있다.

학문은 태양의 흑점이 나타나는 원인을 해명함으로써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법칙과 그 법칙의 배반으로 생기는 결과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과제에 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은 마음의 양식이다.그러나 육체의 양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육체에 해롭듯이 마음의 양식도 지나치면 병에 걸리는 수가 있다.그것을 피하려면 마음의 양식도 육체의 양식과 마찬가지로 꼭 필요한만큼 섭취해야 한다.

지식이 중요한 것이 되려면,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사람들의 일치를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위대한 지식도 인생에 중요한 목적 달성을,다시 말해 도덕적 자기 완성을 도와 주지를 못한다.

소크라테스가 현명한 것은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점에 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것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학문도 어렵지 않다.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분야의 학문에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밖에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문을 내 몸을 장식하는 제복으로 생각하거나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2015. 9.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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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많아도 진정한 선생님은 없고,가르침은 많아도 따르는 사람이 없는것이 현실입니다.

학문이 이제 게으른 생활에 대한 면허증으로 전락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학문의 올바른 목적은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진리를 인식하는데 있다.

잘못된 목적은 인간 생활에 악을 초래하는 기만을 변호하는 것에 있다.특히 법률,경제,신학이 그렇다.






적은 노력으로 빠르고 쉽게 얻은 지식은 그리 충실한 것이 아니다.학문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 파란 잎만 무성한 경우가 있습니다.세상에서 흔히 피상적인 두뇌밖에 가지지 않았으면서 놀랄만큼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그러나 실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 연구한 지식만이 그의 판단력에 흔적을 남기며 다른 상황에서도 거기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지침이 된다.






그릇된 학문과 그릇된 종교는 일반인들에게 뭔가 신비하고 중대하며 매력적으로 느낄수 있도록 그 교리를 과장된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거만한 학자는 종종 무턱대고 외국어로 권위자인냥 언어를 구사하나 원래는 지극히 쉽고 단순한 것을 마치 무지한 신자들 앞에서 읊조리는 라틴어 기도처럼 이해하기 어운 기도처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때가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는 참으로 간결하다.





지식은 그 목적이 외면적 이익일 때는 반드시 해로운 것이 되고 만다.

다른 내면적 요구에 의해 축척된 지식만이 자신에게나 이웃에게 이로워 집니다.

자손의 눈앞에서 조상의 악업을 칭송하느니보다 우리들 자신의 생활에서 악을 제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인생에 의의와 선악의 관념에 대해 현대의 학자들보다 더 혼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없다.

현대의 학자들은 물질계의 모든 조건을 연구하여 큰 진보를 거두었으면서도 사람들의 실질적인 생활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뿐만 아니라 오히려 큰 해악이 되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문이 어느덧 내 몸을 장식하는 제복이 되어 잘먹고 잘살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된지 오래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