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서운한 일을 했을때 일단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라.

2013.02.12 23:04

 

 

 

믿는 사람이 서운한 일을 했을때 마음은 참담하게 다가 옵니다.

당사자를 원망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 서서 이성적으로 바라 보아야 합니다.

상대가 서운한 일을 하였을때 일단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 합니다.

먼저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모든것을 바라 봅니다.

왜, 그렇게 행동 하였는지,원인이 무엇이지를....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모든것을 확인하고 결과가 그렇다면 일단은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작은 감정과 작은 행동 하나로 큰 실수를 불러 일으킬수 있습니다.






모든것을 알고 있더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을 타야 합니다.

당사자가 스스로 해명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일도 없는것처럼....






그동안 그대는 할일이 있습니다.

상대한 나에 행동과 삶을 성찰해야 합니다.

상대가 나를 서운하게 행동 했어도,

원인은 나에게 있을지 모릅니다.

내가 상대에게 편하며 이해하려고 노력 하였던 사람이라면,

나에게 서운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상대가 서운한 말을 하기전에 먼저 자신이 행동으로 풀어야 합니다.

모든것의 원인은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알게 되면 상대에 대한 서운한 감정보다, 

나에 그릇이 작은점이 후회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나는 나의 작은 그릇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힘들어 하였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로 인한 서운한 마음보다 내가 더 부족한 모습인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2012.01.27 09:1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해를 받기만 하려고 합니다.

적극적인 삶은 모든곳에 나를 투여 합니다.

이해를 못하는 사람은 마음의 벽에 갇혀 사는 사람입니다.

 

 

 

나는 어릴때 이해 받기를 좋아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나 자신도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기란 불가능 합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나를 사랑함에 있습니다.

이해란 머리의 언어가 아닙니다.

가슴에 언어 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타인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때로 이해가 안되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장단점 모두를 무조건 받아 들이는것에 있습니다.

 

 

 

 

 

 

이해를 머리로 받아 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오만 입니다.

머리로 사는 그대는 가슴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끌리는 대로 살아가는 탐욕일뿐입니다.

이해는 똑같은 상황과 환경도 다 다르게 느껴오는것 입니다.

이해를 못한다는 것은 자신만 느끼고 생각하는 것만 동감이 되었을때를 전제한 것이기에 때문에,

상대에 대하여 이해가 되지 않는것 입니다.

 

 

 

이해는 머리가 아닙니다.

이해는 똑같은 상황과 환경이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는 상대방의 부족함도 안아주는것 입니다.

나에 부족함이 많은 인간일수록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폭이 좁아지는것 입니다.

이해는 상대의 단점도 수용 하겠다는 마음에 결단 입니다.

이해는 상대를 수용하는 마음에 아픔인것 입니다.

 

 

 

 

나는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는 적극적인 삶을 생각 합니다.

결국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삶은 가슴이 애들을 벗어나지 못하는것 입니다.

세상을 가진자들이 사람들의 가슴을 이해못하는 것은 그들이 가슴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이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만들뿐입니다.

사람들은 노욕을 두려워해야 함을 경고 합니다.

노인들이 욕심이 더 많아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져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노인 그대가 처음처럼 천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맞으면서 처절한 싸움을 하며 그대의 몸은 비틀어져 있을것 입니다.

그대 삶을 말하고 있는것 입니다.

비틀어진 시신은 이해가 아니었음을 말해줄것 입니다.

죽음도 받아 들이는 이해의 과정입니다.



예술인이 사랑을 노래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2012.01.23 18:20

나도 어릴적에는 예술인들이 하나 같이 사랑을 노래하는것을 보아왔습니다.

지천명에 나이가 들어 세상과 삶을 조금씩 알면서 나도 역시 사랑을 쓰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예술인들은 끝없이 사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예술인들의 사랑이야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도 모든 기준이 사랑이 척도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범부들은 삶의 기준이 세상이라면,나는 더불어 나눔이 기준이 됩니다.

삶을 어느정도 살게 되면 진정으로 세상이 없어서 불행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도,돈도없어 부족한 점만보고 입에 나오는 것은 불만밖에 없습니다.

 

 

 

우리에 삶의 기준이 너무 혼란을 일으켜 무엇이 소중한지를 잃어 버렸습니다.

현실은 돈이 신이요,황제이고,세상의 지배자 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부족한 민족이라 현실과 세상에만 집착 합니다.

 

 

 

외적의 침입이 그렇게 많아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우리 민족이 사랑에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혼의 뿌리는 사랑에 있는것 입니다.

민족과 사회의 근본뿌리는 정신과 넋에 있는것 입니다.

 

 

 

 

세계를 제패한 민족과 국가가 혼이 없으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유대인이  뿔뿔히 흩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한뿌리를 유지 하였던 것은

혼과 넋이 면면하게 이어 내려와 그들의 뿌리가 된것을 기억 합니다.

그 뿌리의 근간은 사랑입니다.

혼이 없는 민족은 쉽게 없어질뿐입니다.

 

 

 

 

이제 우리를 찾는 모든 기준은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에 민족은 영원 합니다.

본능에 민족은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세계를 제패한 국가가 대부분 소멸되어 지리멸멸한것도 이러한 이유 입니다.

 

 

 

 

인생도 사랑이 없으므로 고해의 바다를 항해하는것 입니다.

사회의 구조와 제도도 근본적인 사랑에 뿌리가 없으니,

사용자와 노동자가 서로 싸우기만 하는것 입니다.

우리가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서로 적은 되지 않았을것 입니다.

싸움은 모두의 밥그릇을 버리는 효과를 만드는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