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페이스북

Dooil Kim 12/31 올해 마지막 글: "서두르지 않고 지치지 않기" 1. 1997년 12월 18일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사실 별 감흥은 없었다. 아직 정치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IMF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청춘 임에도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생존을 걱정하던 시기였다. 김대중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 인권, 특히 대북과 외교 정책 면에서는 대한민국의 불세출의 인물이지만 지역주의의 한계와 구시대의 정치는 어쩔 수가 없었고 때문에 그의 시대 정치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 영역은 아니었다. 2. 정치를 일반 시민들의 참여영역으로 확대시킨 인물은 단연 노무현이다. 그는 모든 부조리에 저항하고 바로 잡으려고 했고 또 한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 더보기
배병호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방식. ARS 자동응답방식으로 돌려서 겨우 4%정도의 윤석열 적극 지지층의 응답률을 국민 여론이라고 수시로 호도 하고 있는 방송들.. 리얼미터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조작.구라미터. 더보기
Hyewon Jin [Pat Quinlan, 전투 중 고립] Pat Quinlan은 아일랜드의 군인으로 UN에서 활동한 대령입니다. 1960년 콩고 공화국이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직후, 연방주의자, 부족주의자, 자치주의자들이 대립하는 와중에 광물채굴권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일부 벨기에측 지원으로 카탕가주가 분리독립을 주장하면서 무장 반란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틈타 벨기에측은 자국민의 안전한 귀국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독립주의자인 콩고 국민들이 벨기에군의 완전한 철거를 요청하면서 무장 대립이 증가하고, 소련이 자치주의자들의 요청으로 군대를 파견하자 UN이 나서 평화유지군을 파견했습니다. Quinlan은 UN의 결정으로 Jadotville에파견된 평화유지군을 지휘하는 지휘자였는데, 애초 UN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