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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석

[조미연, 한현희, 박영순 등 세 법관들이 쓴 〈2020아13354 집행정지〉 결정문을 읽고...]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들이 쓴 10쪽짜리 결정문을 읽으면서 참담한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심정에 대해 어쨌거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앞뒤 문장이 서로 엉키고, 앞에서는 이말 했다가 뒤에서는 딴말을 하는 등 횡성수설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한 국가와 문명의 발전이 걸린 심판인데, 법관들이 어쩌다 이런 협량한 사고수준에 머물고 있는지 정말 의심스러웠다.

법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실제로는 인간의 보편적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문단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비판하려고 했다. 이런 수준의 결정문은 상급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추 장관이 즉시 항고했다. 잘한 일이다. 조미연, 한현희, 박영순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조금 더 넓혀야 한다. 이 세상은 법조문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법조문의 문구를 늘어놓고는 이렇게 해석했다가 다른 문구를 인용하면서 또 저렇게 해석한다. 법리로 따지려면 최소한의 일관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법조문에 대한 해석은 시대가 바뀌면 해석도 바뀌어야 한다. 왜냐? 시민들의 일반의지, 즉 그 시대가 요구하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시대정신(Zeitgeist)에 부합하지 않으면 국가와 그 국가가 이룩한 문명이 퇴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과 조직, 그리고 세계를 보는 관점의 깊이와 넓이가 법관들에게 중요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법관들은 검찰총장이라는 직무의 담당자인 윤석열이 직무집행에서 배제됨으로써 “견디기가 현저히 곤란한 유무형의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윤석열이 어떤 손해를 입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횡설수설하고 있다. 윤석열의 손발이 묶여있었는데, 도대체 어떤 '명료하고도 뚜렷한 현실적인 손해'가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공직자는 시민들에게 봉사하는 봉사자의 신분을 갖는다. 그래서 모든 공직자들의 공적 행위를 civil service라고 부른다.

그래서 법관들에게 묻겠다. 윤석열에 대한 징계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직무에서 배제되면, 시민들이 크나큰 불편을 느낀다는 말인가? 나는 법관들의 사고체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법관들 수준이 이 정도란 말인가?

결정문을 읽으면서, 나에겐 세 명의 법관들은 윤석열의 검찰총장으로서의 권위가 손상된 것에 대한 걱정과 염려의 마음이 가득한 것으로 보였다. 법관들은 윤석열이 지난 일년 동안 저지른 일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인권유린을 밥먹듯이 해왔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검찰이라는 국가의 공적 자원을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나 반헌법적으로 배분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단 말인가?

나아가 법관들은 윤석열이 직무를 계속 수행하더라도 “공공복리에 중대할 정도의 나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판단이었는지는 금방 드러났다.

윤석열은 직무정지가 풀리자마자 자신의 위법행위를 감찰했던 감찰부서를 조사하도록 했고, 감찰담당관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감찰한 사람들을 수사하겠다는 결정이야말로 보복행위임이 명백한 것이다. 그런데도 공공복리에 나쁜 영향이 없을 것이란다. 법관들이 생각이 없는 것인지 세상을 전혀 모르기로 맘을 먹은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대목에서 세 법관들의 인간에 대한 이해의 몰각(沒却)을 본다.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의 직무집행을 왜 정지시켰는지 그 이유가 명확해지는 대목이다.

나는 이 결정문을 읽는 내내 법관들이 피라미드형 수직구조와 그 문화 속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아닌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관은 부하들을 맘대로 부려먹을 수있는 꼬붕쯤으로 보고 있는 윤석열의 전근대적 행태에서 멋진 권위를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법관들이여,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높은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일수록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자세가 투철해야 한다. 윤석열이 검사들을 지휘한답시고 한 일이 수사받던 사람이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이 수사는 조국이 죽어야 끝난다고 윤석열이 말하지 않았나.

세상은 이미 네트워크형 수평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서로 부족한 점을 보충해주는 평등한 조직문화로 바뀌었다.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가의 시민들은 대부분 수평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일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조직문화는 대단히 후진적이다. 제국주의적 조직모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법관들이 그토록 졸렬한 수준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가? 왜 역사의 흐름과 세계의 변화에 그토록 뒤떨어졌는가? 왜 이들은 얄팍한 법조문의 틀에 매몰되어 있는가? 이들은 왜 그 알량한 법조문마저 왜곡하여 해석하는가?

대한민국의 법원과 법관들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도 깊이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일차적으로는, 오랫동안 지속해온 사법시험제도와 법관인사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멍청해질 수밖에 없는 제도는 결국 김기춘, 우병우, 홍만표, 진경준, 최유정, 나경원 등과 같은 수준의 사람들을 배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결정문을 쓴 세 명의 법관들도 이런 제도의 희생양일지 모른다. 나는 아직 훌륭한 법관들이 쓴 판결문을 보지 못했다.

시간 나는 대로 법원과 검찰의 졸렬함, 파렴치함, 무지함의 용기에 대해, 그리고 그걸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쓰고 싶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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