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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sung Kim

검찰의 정보기관 “범정”이 검찰의 이해관계가 걸린 재판 담당 판사들의 정보를, 심지어 다른 사건의 압수수색영장으로 확보한 자료까지 사용하여 - 형사소송법 제215조 1항 위반입니다. 심지어 법조인이라는 사람들도 별건압수수색 영장의 법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ㅠㅠ - 수집한 후, 이를 “특수부”에 전달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침묵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라고 해서 대법원장의 머릿속을 알 방법은 없으니, 저도 정확한 이유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이유로 짚이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 설명을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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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간 국정농단 등 중요 사건과 관련해 국민들이 가장 많이 들어본 범죄가 “직권남용”일 겁니다.

직권남용은 직권을 남용하는 범죄입니다. 그래서 대상이 직권, 그러니까 법적인 권한의 범위 내에 있어야 하고, 그 직권을 남용, 즉 사용하긴 했지만 “부적절하게 사용”했어야 성립합니다.

이렇게 보면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는 사실이 보이실 겁니다. 예를 들어 검사가 수사를 하는 것은 권한의 범위 내라고 볼 수 있지만, 검사가 검찰청 주변 맛집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일 겁니다. 그렇다면 검사가 수사 대상인 적이 있었던 사람이 운영하는 검찰청 주변 맛집 정보를 수집했다면, 이건 권한 내일까요, 밖일까요? 아리송하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이런 케이스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검사가 관할 경찰서 경비실 순경에게 강제로 경찰서 주변 맛집 정보를 알아보라고 했다면, 그것은 직권 남용일까요 아닐까요? 경찰서 경비실 순경은 사법경찰이 아니므로 검사는 경찰서 경비실 순경에게 지시할 권한이 없고, 맛집 정보 검색 역시 검사나 순경의 직무 범위가 아닙니다. 그러니 매우 부당해보이는 케이스이지만, 이것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는 없을 겁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직권남용이라는 범죄를 적용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법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잘 연구해서 규정을 잘 만들어야 할 겁니다. 권력자들이 전횡하는 경우나 방법 등을 잘 살펴서,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해야 하겠죠.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의 직권남용죄가 그렇게 잘 정비되어 있을까요?

제가 이렇게 물음표를 붙이는 것을 보니 그럴리가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이 드실 겁니다. 맞습니다. 그것도 잘 정비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아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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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제123조(직권남용)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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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죄는 저 규정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저 “개정”이라는 내용에 있습니다.

직권남용죄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때 들어간 규정입니다. 당시 규정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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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조 (타인의 권리행사방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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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바뀌었을 뿐 내용이 똑같습니다. 아니, 딱 한 군데 다른 곳이 있습니다.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없습니다.

이 벌금 규정이 1995. 12.29. 들어갔습니다. 그 전에는 그나마 무조건 징역형으로 무겁게 처벌되던 조항이, 벌금이 들어가면서 훨씬 더 가볍게 처벌받을 수 있도록 경감된 겁니다.

권력자들의 전횡을 규율하는 유일한 일반처벌조항인 직권남용죄가 왜 7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이 지경으로 방치되었을지는, 조금만 생각해보시면 다들 잘 아실 수 있습니다. 이 규정이 독재자, 권력자들의 전횡을 처벌하는 조항이기 때문에, 그동안 군사정권과 그 잔당들과 함께 권력과 부를 누렸던 “사회 지도층들”에게 이 조항은 가능하면 아무도 모르는 저 어딘가에 묻어두고 싶은 규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지난 국정농단, 사법농단 사태입니다. 온 국민이 분노하는 심각한 권력형 비리가 터졌지만, 그들을 처벌할 규정이 마땅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바람에, 그들이 무죄로 풀려나기도 하고, 재판 도중에도 시도때도없이 풀려나고, 생계형 도둑보다도 가벼운 처벌을 받았던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수년 전부터 업계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지켜봤던 것이, 법원과 검찰이 “직권남용”의 해당 범위를 좁히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직권남용 조항은 모호한 개념을 사용해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해석상 “직권”의 대상이 되는 권한의 범위를 좁히면, 또는 재량을 크게 인정해 남용으로 볼 수 있는 범위를 좁히면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직권, 남용, 권한 등의 개념이 정확히 주어져있기 않기 때문에 이 개념들은 판례를 기준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형법 판례는 검찰과 법원이 만듭니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법농단의 경우 대상자들 대부분이 검찰, 법원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직권남용을 좀 더 쉽게 인정되도록 만들면 검찰과 법원이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정농단 사건이 시작될 무렵부터 검찰과 법원이 직권남용 성립 요건을 까다롭게 좁히고 있는 거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던 겁니다.

물론 이런 의혹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의혹을 가질만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금 사법농단 관련한 판결들이 모두 무죄로 판결되고 있는데, 법원이 그런 준비를 한 결과가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이유는 결국 지금도 직권남용죄 규정에 대해 아무런 연구도 없고, 입법 연구도 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기관의 전횡 사례를 분석해 구성요건을 세분하고, 검찰, 법원이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개념들을 구체화하는 등의 작업을 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 거의 전부가 이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듯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으로 대법원의 태도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이 저지른 “사찰”을 문제삼는 경우, 대법원이 직권남용에 대한 법적인 의견을 밝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아직도 현재 진행중인 사법농단의 판단에도 기준을 제시하는 결과가 됩니다. 나아가 그동안 직권남용의 범위를 좁히려고 애썼던 것들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대법원 역시 소속 법관들을 통제하는 수단이 필요합니다. 문제의 “물의 야기 법관” 자료도 원래는 대법원이 만들었습니다. 지금 “범정”의 사찰을 비판하면, 그 비판이 대법원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의 중대성을 생각하면 윤석열 등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대법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사안의 문제점을 지적할 리는 없다고 봅니다. 결국 대법원도 대검찰청과 다를 바가 없는 조직이니까요.

Ja Choi, 장치영, 외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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