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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 Hyun Kim

칼럼 한번 쓰려고 꽤 많은 자료를 뒤적이는 경우가 있다. 첨예한 내용일 수록 자세히 다 따져 보곤한다. 하지만 그걸 전부 다 넣을 순 없다. 이번 글에도 과한 추정으로 이어질 거 같아서 칼럼에는 넣지는 않았던 부분이 있다.

수사정보정책관의 사찰을 사찰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해당 조항을 싹 다 뒤져봐야 했다. 국가법령정보 센터에 접속할 때마다 우리나라 법리가 꽤 꼼꼼해서 늘 감동받았는데 최근의 법령과 행정규칙들은 국가기관의 불법 사찰이 가능할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단 법알못이다 보니 사안을 입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해서 '정부조직법',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대검찰청 사무분장규정'을 들여다 보았다.

가장 핵심인 수사정보정책관의 직무범위를 짚다 보니 그동안 이 양반들이 어떤 공기를 마셔온 건가 싶어 이를 다루는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제3조'가 어떻게 개정돼 왔는지 년도별로 연혁을 쭈욱 거슬러 올라가봤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조항의 진화 흔적을 통해 추측하건대, 현재의 수사정보 담당관의 조상들이 걸어온 발자취대로라면 1998년 12월 30일까지는

‘기타 부내 다른 과의 주관에 속하지 아니하는 사항’

이라는 애매한 조항이 있었다가 이듬해인 1999년 1월 10 개정판부터 사라지면서 사무범위의 규정이 보다 또렷해진 게 어떤 터닝포인트로 보였다.

다른 과의 주관에 속하지 않는 사항이란 규정은 검찰이 하는 일체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 아닌가. 상상 하건대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

"왜 판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셨죠?"

"그게, 판사의 성향 정도는 알아야 일선 검사의 실무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 정보는 다른 과의 주관에 속하지 않아서요. 그래서 법대로 한 겁니다."

이런 규정이 있든 없든 사찰을 하려면 자유로이 했겠지만, 6~70년대 내내 사회가 발전하면서 검찰청 사무기구 규정도 차츰차츰 세분화/강화하며 발전해 나가던 중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진 이 조항의 존재는 꽤 이채롭게 보였다.

아마도 넘쳐나는 인구와 사건들 그리고 업무량 때문에 실용적 측면에서 고안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박정희의 통치로 흉흉하던 1969년 당시에 공안사범에 대한 온갖 위법적 행위도 가능토록 해주는 '코에 걸면 코걸이' 조항이 내심 의미심장해 보였던 것이다. 그게 최초의 민주정부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99년에 이르러서야 사라졌다니, 우연이라 치기엔 입안이 씁쓸 할 수 밖에. 그러나 역시 단순한 추정이라 칼럼에 싣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후 이 조항이 없어진 이상 현행 법령이 정한 외의 정보활동을 하는 것은 위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검사들의 반발은 사찰이다 아니다가 아니라 추 장관의 행위가 적절치 않다는 것이지만, 솔직히 사찰 문건에 대해 아무도 양심 고백이라든가 내부비판을 하지 않는 건 매우 실망스럽다. 보고서를 만든 당사자인 성 검사나 문서를 그냥 뿌려버린 윤 총장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모두 제정신인가 싶다.

일선 검사가 공판 준비하며 알아서 챙겨도 될, 자기 혼자만 보조적 수단으로 쓰겠다 해도 반 정도만 고개가 끄덕여질 문서를 엉뚱하게 수사관련 부서에서 수집한 뒤 조직계통을 따라 상보하고 타 부서에 조직계통 그대로 공유하다니.

한 조직의 조직력이란 한 사람의 업무능력으로는 소화 불가능한 기대역량을 도달가능한 목표치로 현실화하기 위해 조직 구성원 전체의 업무로 분장시키고 이의 총합을 공유함으로써 조직 전체의 역량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즉, 조직력을 갖춘 쪽은 언제나 개인보다 힘의 크기에서 앞서고 권력의 비교상에서도 거대하다. 그런 조직에서, 게다가 수사와 기소권이라는 막대한 권한의 권력을 갖고 있는 조직에서 개인정보를 법이 정하지 않은 범위에서 수집했는데 여기에 의도가 있네 없네가 무슨 소용인가. 그냥 수집한 거 자체가 위험한 잘못이지.

그러니 검찰이라는 협업 조직의 각 분장 업무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다시 조직에 회람시켜 외부대응 조직력을 더욱 강화한 이번 사안은 그저 권력기관의 사찰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된다는 법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한글을 아는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법리가 쉽게 이해되도록 쓰여진 법령의 맥락을 자의적으로 규정하며 그저 편의와 관습의 하나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검사이니 검찰 개혁이 안되는 이유를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추 장관에 대한 검사들의 비판과 비난이야 마음껏 해도 좋고 결국엔 유권자들로부터 평가와 심판을 받게 돼 있으니 그 반발이 크게 잘못됐다고는 생각 않는다. 뭐 정치적 신념의 이유로 그런다 해도 잘못일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 조직의 옹위엔 법리적으로 잘못됐다며 눈에 쌍심지를 켜는 사람들이 법을 다루는 직업을 갖고도 정작 나 같은 일반 국민의 눈에 법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 - 게다가 사찰이라는 막대한 쟁점 - 엔 입을 다물고 정당했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한심하고 또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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