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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삼용

퇴임하는 강우일 주교 “평화 위한 일에 동참해달라”

제주교구장 18년 소임 22일 마쳐

17일 퇴임 감사 미사서 평화 호소

4·3과 환경·생태 문제에 목소리

“한국 현대사, 4·3으로 다시 봐

앞으로도 평화 위해 일하고 싶어”

“평화를 위해 일하는 동지가 돼 주십시오.”

노주교의 마지막 말은 차분하면서도 울림이 있었다. 강우일 주교가 17일 오후 8시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천주교 제주교구장 퇴임 감사 미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 주교는 오는 22일 18년 동안 맡아온 천주교 제주교구장 소임을 끝낸다.

강 주교는 이날 퇴임 미사에서 사제로서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한국 현대사에 각성하게 된 계기를 언급하고 평화를 위한 길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강 주교는 평소 제주4·3 문제 해결을 비롯해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베트남전에서의 한국 정부의 책임 문제 등을 꾸준히 제기하고, 4대강 사업과 난개발 문제 등 생태환경 문제에 목소리를 내며 약자들을 위한 일에 발 벗고 나섰다.

강 주교는 이날 자신이 신학 공부를 하던 시기 아무도 없는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은둔소에서 20일 동안 지내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본 경험을 먼저 꺼냈다. 강 주교는 “날마다 식사 준비를 위해 마른 나뭇가지를 주으러 사막을 헤매고 다녔다”며 “열흘 정도 지난 어느 날 사막 한복판에서 혼자 낙타를 끌고 여행하는 원주민을 만났다”고 말했다.

햇볕에 까맣게 탄 얼굴의 그 원주민과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서 만나자 너무 기뻐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서로 끌어안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고 회고했다. 강 주교는 “쭈글쭈글한 주름투성이에 새카만 얼굴의 그 원주민이 자신을 보자마자 너무나 반갑다는 표정으로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는데, 그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며 “그날 일기장에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썼다고 했다”고 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으로 부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강 주교는 18년 전 제주교구장으로 부임한 뒤 비로소 한국 현대사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는 같은 한국 땅이지만 너무 많이 달랐습니다. 4·3 때 제주도민이 얼마나 많이 죽고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왔는지 알게 되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주도민들을 뵙기에 너무나 죄송하고 가슴이 따가웠습니다.”

강 주교는 “4·3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 제주도민은 4·3 때부터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이었다. 고기잡이와 밭농사밖에 모르던 순박한 사람들 위에 어느 날 갑자기 좌우 이념의 굴레가 씌워져 숲 속의 토끼처럼 사냥을 당하다 잡혀 죽거나 몰래 도망을 쳐야 했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분단은 단순히 38선의 지역적 경계가 아니라 피를 나눈 겨레, 동네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철천지원수처럼 적대하도록 타율에 의해 강요된 사회적 분단임을 깨달았다”며 “국민 대다수가 제주도민의 한과 고통의 역사를 모른 채 관광지로 놀러만 온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어 강 주교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 주민들을 두쪽으로 갈라놓은 데 대해 언급했다. 강 주교는 “강정의 아름답던 바닷가를 콘크리트로 덮어놓고 군사기지를 만들었다. 그 뒤로 저는 우리가 국가 없이 살 수는 없지만, 국민을 섬기기보다 괴롭히는 국가는 감시하고 제동을 걸고, 성토해야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줄곧 목소리를 내왔다. 2012년부터는 강정생명평화대행진 행렬에 합류해 직접 걸으며 주민들을 위로하고 경찰과 주민 간 중재에 나서 충돌을 막기도 했다. 2015년 9월에는 성금을 모아 강정마을에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를 세워 초대 센터장을 맡아 평화를 나누는 배움의 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강 주교는 “제주에 와서 저는 국가가 저질러온 불의와 폭력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평화를 위해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도 평화의 일꾼으로 일하고 싶다. 여러분도 평화를 위해 일하는 동지가 돼 달라”며 강론을 끝마쳤다.

이날 강 주교가 미사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팸플릿에는 평소 입는 수단이나 제의가 아닌 이례적으로 청바지 차림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의 사진이 담겼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들의 피해 기록화 작업과 피해 마을 교육시설과 장학금 지원 등의 사업을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인 '한베평화재단' 후원을 홍보하는 이 팸플릿에는 ‘평화일꾼 강우일’이라고 돼 있다.

앞서 강 주교는 지난 13일 지역언론인들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제주의 미래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환경에) 손대지 않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 훼손된 것을 어떻게 회복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돈을 쓴다면 그런 일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2008년부터 6년 동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지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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