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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용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만든 모임이 '바보회'였습니다.

모두들 제 밥그릇 걱정하고 제것을 챙겼지만

그는 바보같이 남의 밥그릇 걱정으로 생명을 내려놓았습니다. 그것도 혹독한 박정희 시절에 말입니다.

바보, 바보, 바보야.

우리시대 거룩한 바보들이 있습니다..

제주 강정에서 평화를 말하는 바보들

불법사드반대하는 바보들

세월호 진실을 인양하려는 바보들

비정규직노동자투쟁, 갑질근절 운동하는 바보들

택배노동자연대투쟁하는 바보들

교회를 쇄신하겠다고 말하고 글쓰는 바보들

민들레국숫집바보들

그래서 세상이 이만큼 온것입니다.

그런 바보들 때문에 대통령도 비판하고 욕해도 철창가지 않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3%의 소금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아직 3%되는 소금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여기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바보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의 성인둘은 대부분 바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똑똑한 사람들만 넘쳐납니다.

우리도 어느새 헛똑똑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하루, 단 오늘 하루만이라도 바보가 되어 살아보렵니다.

오늘은 바보되는 날...

바보들의.합창,

바보들의 기도가 울려퍼지기를

아래는 오늘 전태일 열사관련 뉴스기사 스크랩입니다. 꼭 읽어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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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휴일 단 이틀, 하루 평균 노동시간 무려 14시간. 정작 일당으로 손에 쥐는 돈은 차 한 잔 값인 단돈 50원.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6, 70년대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근대화'를 내세워 경제성장에 열을 올리던 1964년. 대구 출신인 16살 전태일은 동생과 동대문 평화시장에 발을 디뎠습니다.

의류공장 말단으로 일하던 전태일은 공장에서 자신보다 어린 여공들을 만났습니다. 당시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만 2만 명가량, 대부분 나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도우며 노동문제 의식을 키우던 전태일은 스무 살이 되던 해 근로기준법에 눈을 뜹니다.

이후 동료들과 '바보회', '삼동회'라는 단체를 꾸려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나섰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자 수없이 구청과 노동청을 찾아 개선을 촉구했지만, 돌아온 건 천대와 괄시뿐이었습니다.

결국, 1970년 11월 13일, 22살이던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피맺힌 외침이 시장을 메웠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 뒤 평화시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전국에선 활발한 노동운동이 펼쳐졌습니다. 당시 대통령 후보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반노동자적 정책에 대한 항의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뒤,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의 공로를 되새기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노동운동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전태일 열사가 뭐라고 얘기할지 궁금하단 말에는 '아직 멀었다고 하실 것'이라며 노동존중 사회로 나가겠단 각오를 다졌습니다. 문 대통령은 생전의 전태일 열사가 모범업체를 구상하며 쓴 사업계획서를 보며 사회적 기업의 모델이 됐다고도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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