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페친들 중에 교회가 정부의 방역 지침에 협조해야 한다는 논리를 수용하기 위한 근거로 영국의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의 요리문답 내용을 소개하는 글을 공유하는 것을 봤습니다.
리처드 백스터는 전염병의 창궐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정부가 (일시적으로) 예배 회집을 금지하는 조치에 교회가 협조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폅니다. 지금의 우리 상황에 적절한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며, 이를 적극 소개하고 공유하는 페친들의 '선의'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런 방식의 신학적 '사대주의'에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지금 한국의 상황을 우리 스스로 주체적으로 분별하고 해석하며 대안을 찾을 능력이 없어서, 굳이 수백 년 전의 서양 신학자들의 책과 글에 호소해야만 비로소 수긍이 되는 교회 문화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입니까? 쉽게 말해서, 리처드 백스터의 글이 없으면 이 위중한 시기에 정부의 공공방역에 교회가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개신교는 무지하고 무능한 것입니까? 이것은 정말 지독한 신학적 사대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리처드 백스터 시대의 영국은 일종의 크리스텐덤(기독교 세계)입니다. 즉 교회가 정부와 함께 국가의 안녕을 공동으로 책임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정부의 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리처드 백스터의 주장은 하등 특별할 게 없는, 당시 영국 상황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재탕한 것에 불과합니다.)
반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한국 개신교는 점점 더 소수종교화 되고 있는 처지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단 한 번도 크리스텐덤이었던 적이 없는 국가입니다. 개신교인들만 한국사회가 마치 유사 크리스텐덤인줄 착각하고 오독하여, 그간 불필요할 정도로 [장로 대통령을 만드려는 등] 정치에 개입하려고 했던 그릇된 전력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도 이런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신자들이 많지요.)
한국사회에서 소수종교화 되어 가고 있는 개신교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오판하고 한국사회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을 넘어, 공공방역에 맞서 반정부투쟁을 벌이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이것이 리처드 백스터가 살았던 시대와, 한국교회의 컨텍스트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인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양자의 컨텍스트를 간과하고 단순히 수백 년 전의 서구 신학자의 글을 인용하여 한국교회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제시하려는 것은 일종의 신학적 넌센스입니다.
제발 한국사회에서 한국교회가 처한 실정에 맞게, 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그런 신학적 자주성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대에 교회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실 복잡한 신학적 반성과 논의를 필요로 하는 고차방정식도 아닙니다. 그저 국민 일반의 상식에 맞게 행동하기만 해도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명확한 사안조차도 굳이 외국의 오래된 신학자의 언설에 호소해야만 하는 신학적 사대주의가 참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