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

2020. 11. 19. 21:59

 

의도가 죄의식과 범죄를 낳는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잘못 행동하는 것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법을 따르는 것보다 낫다.

지옥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드러나는 행동이 드러나지 않는 의도를 보여준다.

너의 의도가 너의 탈것이다.

선의 경우에는 행동이 의도 위에 있고,악의 경우에는 의도가 행동 위에 있다.

방앗간에 온 자는,빻으려고 온 것이다.

의지로 일어난 일로 널리 알려진다.

범죄를 만드는 것은 우연이 아닌 의도이다.

선의가 어리석은 행동을 정당화한다.

새장을 사는 사람은 새를 원하는 것이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찬  (0) 2020.11.24
칭송  (0) 2020.11.23
영혼에 의한 탄생  (0) 2020.11.22
이성  (0) 2020.11.21
자기만족  (0) 2020.11.20
의도  (0) 2020.11.19
양심 -영혼의 목소리  (0) 2020.11.18
진정한 삶은 시간의 바깥에 있다.따라서 미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0) 2020.11.17
사랑 - 연인들  (0) 2020.11.16
기도  (0) 2020.11.15
식사  (0) 2020.11.13

이주혁전문의

페이스북 2020. 11. 19. 21:51

한 대학병원에서 몇몇 과장들이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랑 룸싸롱에 가서 천만원짜리 술판을 벌이고 왔다는 제보가 나왔다.

제보 내용에 따라 해당 과장들은 그 제약회사로부터 수년간 엄청난 액수의 리베이트를 받아 온 것으로 짙은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제보자는 이를 감사, 징계해야 할 병원장이 도리어 나서서 그걸 덮었다고 했다. 병원장도 비리 제약회사들로부터 신나게 받아먹었다는 의혹 및 접대받은 과장들과도 막역한 사이라는 소문이 온 병원 동네방네에 파다했다.

이렇게 너무 시끄럽다 보니 사건이 대학 이사회에까지 올라간다.

대학 이사회에서는 지금까지 대학병원 감찰같은 거에 관여해 본 적이 전무하지만, 너무 이 사건이 세상에 많이 알려진데다 액수가 너무 커서, 병원장 및 리베이트 받아먹은 과장들을 감찰하기로 어렵게 결정을 내린다.

따르릉 따르릉

"네 병원장실인데예"

"네 여기 대학 이사회 감찰과인데요 병원장님 이번 리베이트 사건때메 대면조사 좀 필요하시다고 합니다. 날짜 좀 잡아 주십쇼."

"뭐라요? 어디라고요?"

"대학 이사회 감찰관데요"

"대핵교 이사회에서 와 우리 뵹원장님을 감찰한답니꺼? 대핵 이사회면 그쪽 일이나 잘 할 일이지. 일 없심더 끊십니더"

다시 따르릉 따르릉

"병원장실이예요"

"아까 전화 건 대학 이사회...."

"아니 니가 몬데 자꾸 전화를 하노 일 없다쟎노"

이러이러하게 됐다고 보고를 들은 대학 이사장은 어안이 벙벙해진다. "아니 뭐 그런 애들이 다 있냐? 누가 전화 받은 거냐?"

"병원장 비서관이라는데 뭐 전화 해도 말도 안 듣고 끊고 메신저 답도 않구 그러든데요 완전 무대뽀에여 힝....."

"그럼 어쩔 수 없이 인편으로 전달해야 되네 에이 참. 너거 사람 두명쯤 보내서 조사 협조 공문 전달하고 온나"

"네"

이리하여 이사회의 젊은 직원 두 명이 병원장실로 간다.

(병원장 비서관실) 똑똑

"네 누구세요"

"네 저희 대학 이사회 감찰과 직원들입니다. 감찰 협조 서류 전달해 드리러 왔습니다"

"뭐라꼬요 어디라고예"

"대학 이사회..."

"아 이거 ㅁㅊ 놈들 아이가 늬덜 여기가 어라고 이렇게 막 들어오노"

"문 열어주니까 들어온 건데요"

"너 입사 몇 기야? 너 직속 상관이 누구냐. 새파란 게 대가리에 피도 안 말라갖고 뭐? 감찰? 협조?"

비서관은 서류를 낚아채서 직원들한테 던진다.

"아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정식 협조 공문인데 어째서 비서관님이 전달을 안 하십니까?"

"야, 늬네 무슨 리베이트 어쩌고랑 우리 병원장님 장모랑 사모님 일때문에 자꾸 이 ㅈㄹ하는 것같은데 내 모를쭐 아노"

"네? 장모랑 사모님은 무슨 일인데요? 저희는 그냥 서류 전달하러 왔는데요"

"어서 이것들이 고진말 하고 앉았나 어린노무 시키들이. 당장 가."

"아니 말이 안 통하시네. 병원장님 만나 뵙고 그럼 저희가 직접 드리고 가겠습니다."

"뭐라 늬들이 우리 병원장님을 만나. 야이 @#$#$^%#%^ 셰퀴들이 미친나 너 나이가 몇 살이가 허허이 나 참. 가라 늬들. 그낭 갈래 아니면 줘 터지고 갈래?"

비서관실에서 하도 난리 난리들을 하니 결국 이사회 감찰 직원들은 발길을 돌린다. 서류 전달을 하지도 못하고 병원장 얼굴은 보지도 못함.

"허 나 참 세상에 뭐 이런 일이 다 있담?"

이들이 기가 차서 병원을 나서고 나서 바로 다음 날. 병원장 동창들이 돈을 대는 "00대학 동창 신문"에 이런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린다.

"대학 이사회. 병원장 감찰하겠다며 평직원을 보내. "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병원장을 감찰하는데 평직원을 보내서 면담을 요구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

'페이스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국교수  (0) 2020.11.20
華輪  (0) 2020.11.20
이향례  (0) 2020.11.20
김상수  (0) 2020.11.20
김명석  (0) 2020.11.20
이주혁전문의  (0) 2020.11.19
황산  (0) 2020.11.19
華輪  (0) 2020.11.19
엄삼용  (0) 2020.11.19
김 두일  (0) 2020.11.19
이주혁전문의  (0) 2020.11.19

황산

페이스북 2020. 11. 19. 21:49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곳, 거기서 나는 멈춰 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 중의 하나이다. 비트겐쉬타인의 말이다.

선사들이 하는 말과 약간 비슷하다. 정신 차렷! 꿈 깨! 고만!

멈춤 혹은 정지하는 힘, 이것이 있을 때 휩쓸리지 않는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광기에 말리지 않고, 유행에 감염되지 않는 것.

일종의 판단중지를 말하는 것 같다. 멈추어 서는 데 머무르지 않고, 다른 선을 긋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탈주, 다르게 보기, 삐딱하게 보기, 거꾸로 보기, 다시 보기, 첨부터 다시 보기가 필요한 것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속는다. 우리를 속이는 것들, 권력과 자본과 언론과 SNS와 엉터리 교사들과 광대들에게.

-

비트겐쉬타인은 글쓰기와 예술에 대해 참 많은 말을 했다.

- 예술가는 자기가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읽으면서 느끼기 원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처음부터 완전히 헛소리다.

- 예술작품은 <다른어떤것>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전하려 한다.

- 논리적 추론의 규칙은 언어 게임의 규칙이다.

- 시의 정점은 지성의 뾰쪽함이 충심(衷心)으로 옷 입혀지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면 너무 뾰쪽해진다.

- 조악한 문장처럼 보이는 것이 좋은 문장의 씨앗일 수 있다.

- 내가 시를 쓸 수 없듯이, 나는 산문도 단지 그만큼밖에, 더는 쓸 수 없다. 나의 산문에는 아주 일정하게 한계가 놓여있고, 나는 내가 시를 쓸 수 없는 만큼이나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장치되어 있다. 오직 이 장치만이 나에게 이용 가능하다.

비트겐쉬타인은 스스로 산문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시였다. 그리고 철학은 시처럼 쓰여져야 한다고 말한 것 같다(어디선가 읽었는데 찾을 수 없다). 사실 그는 명제적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명징하고 간결한 글을 주로 썼다. 그가 남긴 아포리즘들은 깊고 아름다우며, 우리의 사유와 마음을 맑고 명료하게 한다. 그리고 깊은 데로 데리고 가는 것 같다.

현대철학자들도 문학적 메타포를 아낌없이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지성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감각에 어떤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시는 그런 것이다. 은유가 조성시켜주는 다의적 의미와 느낌과 흔적은 글에 어떤 '비밀' 혹은 '신비'의 차원을 남겨주는 것 같다.

-

어제 어느 시인님을 만나 오래 대화하였다. 그분 말씀으로 우리나라에 시인의 수가 6-8만명쯤 된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온갖 문예지와 대학의 문창과가 유행하여 시인들을 양산하였다고 한다. 압구정동 어느 아파트에는 각 동마다 시인이 5-10명이 된다고 한다. 동네서 하는 문화센터에서 몇 개월 시창작법 배우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예지에 함께 시를 올리고 서로 시인이라고 불러주고, 시인으로 등단했다고 한단다. 시와 시인이라는 직함을 엑세서리로 하는 그런 것으로 보인다.

-

그 시인님이 나에게 아주 통렬한 말씀을 던지셨다. 시는 모든 글들 중에 최정점에 있는 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비트겐쉬타인이 생각났나 보다.) 흔히 산문 스타일의 사람이 따로 있고, 운문 스타일의 사람이 따로 있으며 산문 스타일의 사람은 시를 쓸 수 없거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들 하곤 한다. 은유와 환유의 세계가 전혀 다른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분은 글의 기본 근력을 지니지 않은 사람이 시를 쓰면 안된다고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은 산문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조차 말하셨다. 여튼 글의 기본기조차 없는 사람들이 쓴 시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의 형식을 지닌 글이라고 다 시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학습과 기본적인 글공부와 시쓰기는 함께 가야한다고 하였다.

출판인들이나 문학가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에 시인의 수를 아주 소수로 본단다. 그럼 나머지 대다수 시인은 시인이 아니란 것인가? 물론 시인이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자 시의 독자들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아름다운 시로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고 마음의 생태계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아무나 시인이 되는 것에는 그리 동의하지 않는다. 그 시인님이 진정한 시(시인)의 범주를 너무 좁게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하였지만, 그런 태도와 철학은 참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글의 정신, 시인으로서의 소명, 시철학 같은 것이 느껴지지 때문이다. 가볍게 글을 쓰고 기교만 익히고 말장난하고 자기 판매에 능숙한 것이 요구되는 시류를 거슬러 온 몸과 온 삶을 던져 글을 쓰고, 자신을 녹여내어 글을 쓰고 살아가는 그분의 삶을 느끼지 때문이다.

-

비트겐쉬타인은 철학자이지 시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시를 남겼다. 그가 쓴 <문화와 가치>라는 책에 보면, 마지막 글을 시로 맺는다.

"그대 내게 진실한 사랑의

향기로운 베일을 던지면

그 두 손의 움직임에

그 두 다리의 부르러운 움직임에

영혼은 얼이 빠져 버려요

~중략~

누가 짰나요, 당신 발을 감싼 베일

바람결처럼 우리를 부드럽게 만지네요

부드러운 바람조차 당신의 종복인가요?

그것은 거미였나요, 누에였나요?"

* 시란 번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나 번역되기 어려운 것이므로 위 글로 비트겐쉬타인의 시를 평가하지 마시길요^^

-

여튼 우리의 글은 무엇을 추구하여야 하나? 글 쓰는 이는 아름답고 지고한 글을 쓰고자 하고, 아울러 널리 읽혀지는 글을 추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공부를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 갑자기 이런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좋은 밤 되세요 ^^

'페이스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華輪  (0) 2020.11.20
이향례  (0) 2020.11.20
김상수  (0) 2020.11.20
김명석  (0) 2020.11.20
이주혁전문의  (0) 2020.11.19
황산  (0) 2020.11.19
華輪  (0) 2020.11.19
엄삼용  (0) 2020.11.19
김 두일  (0) 2020.11.19
이주혁전문의  (0) 2020.11.19
Jong Cheol Lee교수  (0) 2020.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