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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교수

<상처>

1.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리라. 참 오랜 만에 잠이 오지 않았다. 세 시가 다 되어 잤지만, 일곱시가 되니 눈이 떠졌다. 상처 탓일 것이다. 그나마 나이 덕에 조금은 참을 수가 있었다. 당분간은 이 패시브 어그레시브해지려는 마음과 부단히 싸워야 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고모의 소천 소식과 같이 찾아온 탓에 상처가 더 깊지만, 어쩌겠는가, 감내해야지.

2. 대학원생을 가르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있는 학과에도 대학원생을 잘 가르치는 분들이 계신다. 난 그분들을 존경한다. 한 사람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건 해본 사람만이 안다. 부모 노릇을 해본 사람은 다른 부모들이 자식들을 위해 애쓴 걸 이해하는 법이다.

3. 언젠가 페북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내겐 여학생이 두 명 있다. 그 중 한 명은 지방대에서 학부를 나와 대학원은 연세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 학생은 그곳에 있던 연구원이 거의 대신 연구해 주다시피해서 석사를 끝냈다. 그러니 그곳 박사과정에 진학을 할 수 없었다.

4. 그 학생은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내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그 학생의 지도교수였던 분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 보았다. 그분은 그 학생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해줬다. 여기에 상세한 내용을 적을 수 없지만, 정리하면, 계속 공부하기엔 적당하지 않은 학생이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난 그 학생을 불러 면담을 했다. 동기는 분명했다. 공부가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난 연구실 연구비 상황이 썩 좋지 않았음에도 그 학생을 받기로 했다.

5. 그 학생은 자주 울었다. 세미나 시간에 공격을 받을 때마다 무너졌다. 난 울지 말라고, 세미나를 하다가 울면, 안 된다고. 그러나 난 그 학생의 속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속상하니 눈물이 날 거고, 한번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도 없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졌다. 난 그 학생에게 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일단 이곳에서 2, 3년은 석사과정을 다시 밟는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6. 내 옛 제자 한 분에게 부탁을 했다. 그분과 비슷한 일을 시켰으니 이 학생을 가장 잘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절대로 대신 일을 해주지는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 학생은 생전 처음으로 계산도 직접 하고 계산에 필요한 프로그램도 본인이 직접 짰다. 느렸지만, 마침내 결과를 얻었고 그 결과를 피지컬 리뷰 디에 출판할 수 있었다.

7. 으레 그렇듯, 이 학생의 생애 첫 논문을 축하하며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식당에서 주인공이 사라진 것이었다. 다른 학생 말로는 화장실에 갔단다. 거의 십오분 넘게 이 학생은 화장실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 학생이 자리로 돌아왔는데 두 눈이 벌겋게 퉁퉁 부어 있었다. 만감이 교차해서 화장실에 가서 울었단다.

8. 우연히 그 학생의 전 지도교수를 만나 그 학생의 근황을 전했다. 그런데 그분, 농담이라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다음에도 그런 학생이 있으면 인하대로 보낼게요.

9. 그 학생은 실질적으로 박사과정 학생이 되었다. 연구 내용도 다시 바꿨다. 박사과정에게 중요한 건 독립심이니, 같은 연구를 하는 학생과 같은 일을 시켰다. 이건 일종의 크로스 체크였다. 난 이 연구가 끝나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 토론하며 각자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계산을 끝냈다. 이번에도 그 결과는 피지컬 리뷰 디에 출판되었다.

10. 최종적으로 제대로 훈련된 박사가 되려면 완전히 독립적이어야 하니 두 학생에게 각자 해야 하는 좀 힘든 주제를 주었다. 이건 현재진행형이다. 그 학생은 엄청 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울지도 않고 잘 버텨내고 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내게 버틸 힘을 주는 건 이 학생들임을 깨닫는다.

11. 참 불쾌하고 상처는 받았다만, 나 또한 이렇게 내 학생들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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