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은 양심보다 강하고 그 목소리도 더욱 높을지 모른다.그러나 그 외침은 양심이 외침과는 전혀 다르고 힘이 없습니다.

2015. 10. 2. 07:36



어리석은 자는 양심을 지킨 사람을 바보라 생각 합니다. 

탐욕과 이기심에 사는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본능과 질서에 안주하여 이성이 존재할 자리가 없게 됩니다.

양심은 우리에게 자신의 동물적 자아의 시인을 요구하지 않고 

그 희생을 요구할때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욕심은 마음을 편협하게 만들고 양심은 우리 마음을 넓고 풍요롭게 해준다.

욕심은 우리의 모든 관심을 자아에 집중시켜 끊임없이 자아를 위협하는 수많은 위협을 머리에 떠오르게 합니다.이기주의자는 적대적인 타자들 사이에 고독한 자신을 느끼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행복만을 바라게 됩니다.선량한 사람은 존재들의 행복을 위해 산다.





양심만이 우리의 탐욕의 세계에서 해방하게 합니다.

육체를 위해 사는 사람은 사변적,감성적인 생활에서 길을 잃을수 있지만 영혼은 자신의 길을 잃지 않는다.욕심은 양심보다 강하고 목소리도 높을지 모른다.그 외침은 양심이 말하는 외침과는 다르게 힘이 없다.그것은 이겨서 의기양양할 때도 양심은 조용하고 깊고 위압하는 듯한 목소리 앞에서는 겁을 먹는다.




양심의 소리는 언제나 사리사욕을 떠나 있고 손으로 만질수 없으며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만 얻을수 있는 무언가를 늘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른 심적 동기와 구별 됩니다.

자신의 사상은 손님처럼 대하고 자신의 탐욕은 어린애처럼 대하라.

양심은 자신을 살리고 탐욕은 나를 구렁텅이에 몰아 영원한 길을 잃게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활이 양심에 합치되지 않으면 양심이 마비되어 생활에 장단을 맞춘다

2015. 9. 21. 08:06



이성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인생에 법칙을 배반하고 있음을 지적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배반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그것을 편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그 익숙한 생활을 방해하려는 이성에 목소리를 압살하려고 애쓴다.

인간은 자신이 그릇된 생활을 하고 있을때 자기가 빠져 있는 비참한 처지가 보이지 않도록 자신의 눈을 가릴려고 합니다.




사격을 받고 있는 엄폐물 뒤에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병사들은 위험한 순간을 쉽게 견딜수 있도록 애써 일거리를 찾듯이 모든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위험을 견디기 위하여 일거리를 찾는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보드카,담배,아편등으로 자신을 마비시키고 해치는 일을 그만둔다면 인간 사회에 어떤 멋진 변화가 생길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무엇에 의해서든 자신을 마비시키는 행위는 아직은 범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모든 종류의 범죄에 대한 준비 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타락시키고 피괴하는 것들을 은연중에 장려하는 것은 국민의 도덕과 행복을 배려하지 않고 집권자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에게는 해악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현대인들의 부패한 생활 특히 무의미한 생활은 자신을 끊임없이 이성을 마비 시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양심이 마비되면 지적하려는 사람들을 사회와 격리를 기키려 노력하고 본능에 노예로 유도하기 시작한다.

양심은 자신의 영적 본원에 대한 의식이다.

2015. 8. 16. 09:08



양심의 소리는 곧 신의 소리라고 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문이 덕성을 향해 열릴때 새롭고 신비롭고 기쁘고 초자연적인 아름다움이 그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그때 비로서 자기보다 높은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의무에 대한 의식은 우리에게 우리 영혼의 신성에 대한 의식을 줍니다ㅣ





사람은 철들고부터 종종 자기 내부에서 서로 다른 두 존재를 깨닫는다.

하나는 맹목적인 감성적인 존재이고,또 하나는 영적인 존재 입니다.

양심은 나침판의 바늘과 같아서 한쪽은 선을 가르키고,한쪽은 악을 가르키고 있습니다.우리의 영적 존재는 이 바늘이 가르키는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양심이 가르키는 방향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순간,

우리의 동물적 존재가 양심이 가르키는 방향에서 이탈했음을 지적하는 영적 존재의식이 나타 납니다.





사람들은 도덕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 또는 종교와 우리의 양심에 대해,인간에 대한 두개의 다른지침인양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하나의 양심만이 있을뿐 입니다.양심의 나침판이 없으면 네 속에 무질서한 판단과 이성이 작용한 결과 동물보다 더 나은 삶을 찾을수 없게 됩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배후에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볼 수 없습니다.

만일 그대가 올곧게 그 목소리에 따르고 그 목소리를 자신 속에 받아들여 한시도 그것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그 자신이 그 목소리이고 자신과 그 목소리가 하나가 된것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목소리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그는 더욱 더 많은 예지를 얻게 되고,그 목소리는 위대하고도 장엄한 외침이 되어 그에게 최고의 행복으로 가득한 삶을 계시해 줄 것이다.




너의 양심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두 피하라.

우리의 양심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도 거기에 귀 기울여 그 빛을 받는것도 모두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양심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명령해도 우리가 그것을 하지 않거나,양심이 우리에게 줄곧 경고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에 주의를 돌리지 않는다면 그 목소리는 서서히 약해져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수 있습니다.그러므로 항상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소한 죄를 돌아보지 않음으로서 우리는 쉽사리 커다란 죄에 빠질수 있습니다.

사소한 죄야말로 우리에게 온갖 위험한 습관을 심어 놓게 됩니다.

선과 악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도에 비례하여 성장 합니다.





탐욕은 양심을 없애는 암과 같습니다.

양심이 없어짐에 따라 부끄러움이 없어져 갑니다.

양심을 살피지 않고 살다보면 결국 나는 일생동안 탐욕만 자라 자신밖에 모르게 됩니다.

양심은 마음을 즐겁게 하지만 탐욕은 동물적 본능만 살아있게 합니다.

대부분의 인생들은 일생동안 양심을 성장시키지 않습니다.

마음을 성장 시키려는 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일생동안 본능대로 살아가는 동물과 다를바 없습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양심을 찾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양심의 명령대로 사는 삶이 신의 소리이고 신앙인의 사명 입니다.마음의 대화가 없는 신앙 생활은 나를 잊고 사는 삶과 다를바 없습니다.

신앙 그것은 나를 찾는 시간이지 세상을 찾기위한 발판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단순히 천당이나 해탈과 득도에 있지 않다.

너는 매 순간 과정을 충실히 이행함에 있지 그 나머지는 우리가 관여할 사항이 아님을 기억하라.




사랑으로 과정을 수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