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석교수

페이스북 2021. 1. 23. 22:59

[이런 인간이 있었구나]

처음엔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비교하는 말만 나왔던데... 한쪽에는 열심히 살았고, 다른 쪽에는 대충 살고. 그래서 한쪽 애들은 잘 살고, 다른 쪽 애들은 못 살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까 천하의 고얀 놈이로구나.

친일파 후손들이 잘 사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乙巳五賊,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의 후손들은 일본제국으로부터 작위와 재산을 받아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기득권층에서 떵떵거리고 있다. 친일파는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대개 이런 식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희망이 없다. 이런 자를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이런 자들은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사이 한복판에서 매일 8시간씩 머리박기를 시켜야 할 것이다. 남는 8시간은 만화를 그리도록 하고, 그렇게 번 돈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해 쓰도록 해야 한다.

그런 처벌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소송을 해서라도 이런 역사왜곡범죄자들에게 돈으로라도 혼쭐을 내야 한다. 천하의 고얀 놈이로다.

 

[〈사람 보는 안목〉을 기르자(3)]

이 시리즈 글을 읽어온 분들은 이미 이해했겠지만, 정치인을 선출할 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과학적인 진단메커니즘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합리적 사고력을 갖춘 사람들의 <사람 보는 안목>(앞으로는 그냥 〈사보안〉이라고 하자)은 과거의 전통적인 〈사보안〉을 가진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정치판을 보면서 늘 안타깝게 생각했다. 저렇게 무능한 사람을 뽑으면 안 되는데,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을 떡하니 뽑아 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인재선발에 실패하여 국정농단, 사법농단이라는 비극적 사건도 겪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인사실패가 한둘이 아니다.

사람들이 왜 인재를 잘못 선택하는지 나는 그 원인을 찾아야 했다. 〈사보안〉이 문제라는 것도 알았고, 그것은 우리 민족의 심연에 각인된 〈사보안〉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엉뚱한 사람을 선택해 놓고 후회하기를 반복해왔다. 물론 잘못된 선거제도와 같은 제도적 장치들의 원인도 있었지만, 〈사보안〉만 제대로 갖추었다면 비극적인 사건에 덜 시달렸을 것이다.

나는 인사조직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한국인의 〈사보안〉에 비과학적인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 가지다.

첫째, 전통적인 샤머니즘적 관점이다.

이 〈사보안〉을 가진 사람들은 관상, 주역, 사주명리, 풍수지리와 같은 전통이 우랄알타이 계통의 샤머니즘과 결합하어 미래의 운명을 예측하려 한다.

가족의 무병장수, 사업번창, 입시합격 등을 백일기도를 시작하거나 사찰의 기왓장에다 소원을 쓰는 행위들이 〈사보안〉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이 타인에게도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에 상대방의 태어난 장소와 시간 등을 가지고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친다.

이 위대한 과학의 시대에 심지어 자녀결혼을 위해서는 궁합을 보는 강남아줌마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지극히 이기적 욕망의 분출을 억제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미신적 행태다.

이런 〈사보안〉을 가진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아직도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 사이비신흥종교에 빠진 사람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사고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둘째, 유교적인 계급주의적 관점이다.

이 〈사보안〉을 가진 사람들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교적 가르침에 따라 계급적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는 따로 있다는 식의 관점에서 사람을 평가한다. 무엇보다도 혈연, 학연, 지연으로 얽힌 경우에는 어떤 합리적 설명도 소용이 없다.

그래도 이런 〈사보안〉은 샤머니즘적 〈사보안〉에서 조금 더 진전된 것은 분명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평가기준이다. 체형(體形), 언변(言辯), 필적(筆跡), 문리(文理)로 사람을 진단한다.

현대적 기준으로 보면, 이 모든 것은 장래의 성취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잘 생긴 사람이 일을 더 잘하는가?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이 일을 더 잘하는가? 정말 그런지 조사연구를 해보았는가?

예를 들어보자. 경기고, 서울대, 프린스턴대 경제학박사, 컬럼비아대 조교수, 서울대 교수, 서울대 총장을 지냈고 국무총리까지 했다면 대단히 유능해서 꽤나 큰 사회적 공적이 있었을 것이다. 정운찬에 관한 얘기다.

나는 그의 생애 내내 출세의 욕망에 불타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가 어떤 사회적 성취를 이룩했는지 전혀 모른다. 2017년 19대 대선에 출마선언을 했었다. 출세기회를 간보다 엿보다를 반복하는 기회주의적 인간의 전형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시절 국무총리로 임용되었다. 국회 답변에서 731부대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항일 독립군 부대가 아니냐고 얼버무렸다. 어처구니없는 답변이었다. 일말의 역사의식도 없는 인간임을 증명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오다가다 들어서라도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자기인식과 역사의식이 결핍되어, 그 어떤 사회적 성취도 기대할 수 없다.

오래 전 어느 날 그의 제자인 젊은 경제학자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정운찬에 대한 칭찬이 입에 마르지 않았다. 다 듣고 나서, 정운찬이 사회적으로 성취한 공적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던 모양이다. 제자인 자신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일류대학의 교수로 자리 잡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더 혈연, 학연, 지연에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

슬프게도, 우리나라엔 높은 관직에 있었으면서도 아무 것도 성취한 것이 없는 허망한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유교적 계급주의적 〈사보안〉이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했기를 바란다. 이런 식으로 뽑으면 결국 시민들이 고통을 당한다.

셋째, 상업적인 경쟁주의 관점이다.

이 〈사보안〉은 어찌 되었든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이나 높은 관직을 차지한 사람은 정치를 해도 잘 할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정치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장차관급의 높은 관직에까지 출세했다고 해서 정치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학벌이 좋은 사람은 학창시절 시험성적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기 때문에 정치에서도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험성적과 정치는 전혀 다른 영역인데도 말이다. 골프를 잘 친다고 축구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안철수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눈치 챘을 것이다.

상업적인 경쟁주의적 〈사보안〉을 가진 사람들은 인사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특히 시험성적으로 선발하고 출세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서 많은 사례를 들지 않겠다. 이회창의 경우만 설명하고 끝내겠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 판사를 거쳐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그 역시 출세욕에 불타 대통령에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당시 정치적 이념을 떠나 도대체 이회창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회창은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에게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다. 고졸출신 노무현에게 패배하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 선거과정에서 불법적인 선거자금이 오갔다는 얘기가 돌았고, 이듬해 한나라당은 차떼기정당이었음이 밝혀지는 바람에 나라 전체가 뒤집어졌다. 그럼에도 2007년 17대 대선에 또 도전했고 비참하게 패배했다.

법률가로서는 유능했을지 모르겠으나 정치판에 나온 후 이렇다 할 사회적 성취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성취는커녕 이회창이 속한 한나라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총풍사건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정치판을 개판으로 만들었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이회창을 지지했을까? 상업적인 경쟁주의적 〈사보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가 경쟁을 뚫고 아무도 쉽게 차지할 수 없는 고위관직을 두루 거쳤기 때문에 그에게 능력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를 지지했다. 고위관직에 있으면서 시민들을 위해 어떤 사회적 성취를 이루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이회창은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관리해온 것 말고는 어떤 성취도 없었다. 오히려 사회에 해악을 끼쳤다. 이낙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친 김에 예를 하나만 더 들어야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의 매력도에 따라 좌우된다. 여기에 상업적 선전·선동의 기술이 작용한다. 출세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찬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관심을 끌려고 눈썹문신을 한다든지 머리염색을 한다든지, 심지어 성형을 하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 미디어의 '아내의 맛' 같은 연예 프로에 나가 마케팅 기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의 선전·선동의 기술은 오히려 역량진단 전문가들에게는 역효과를 낸다. 왜냐? 이런 얄팍한 기술은 사회적 성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고, 인간 내면의 속성(underlying characteristics)은 그런 포장지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내면의 속성이지, 그의 이미지가 아니다.

이런 상업적 경쟁주의적 〈사보안〉은 사람을 잘못 판단하게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보안〉이어야 하는가? 성취지향적 〈사보안〉이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정치인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시민들이 살아온 역사적 배경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시적 지평(diachronic horizon)이 열려 있어야 하며, 동시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공시적 지평(synchronic horizon) 또한 열려 있어야 한다. 이 두 지평이 융합함으로써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정치인은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과거에도 성취해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직접 경험이 없더라도 그것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최소한 있어야 한다. 과거에 노력한 흔적도 없던 사람이 앞으로 잘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누구라도 계획은 세울 수 있고 말도 번지르르하게 할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과거를 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자세히 살펴야 한다.

정치인 역량진단을 위해 과거의 흔적을 살피다보면 반드시 그 정치인이 참여했던 여러 사건에 마주치게 된다. 큰 사건일수록 좋다. 그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어떤 의도로, 어떤 행동을 해서, 어떤 결과를 산출했는지 조사해야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역량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사실을 사실대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이것을 도구적 역량군(instrumental competencies)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분석적 사고력(Analytical Thinking, AT), 개념적 사고력(Conceptual Thinking, CT), 영재성(Giftedness, GIF)이라는 세 개의 역량요소가 포함된다.

둘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추상화 역량군(abstraction competencies)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창의성(Creativity, CRE), 미래지향성(Forward Looking, FL), 학습능력(Learning Capability, LC)이라는 세 개의 역량요소가 포함된다.

셋째,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끝까지 완성하여 제공할 수 있는 끈질긴 의지와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을 목적지향적 역량군(purpose-oriented competencies)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성취지향성(Achievement Orientation, ACH), 대인영향력(impact & influence, IMP), 정직성실성(integrity, ING)이라는 세 개의 역량요소가 포함된다.

〈성취예측모형〉을 활용하는 〈사보안〉을 가져야 한다

정치인으로 대성하려면, 이 세 가지 역량군, 즉 아홉 가지 역량요소(competency factor)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전 글에서도 누누이 강조했지만, 이러한 역량요소들은, 타고나는 신체적 특성과 비슷해서 후천적으로 노력해도 잘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어려서부터 이런 재능을 타고났는지 스스로 성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단지 출세욕만으로 정치에 나서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을 괴롭히는 꼴이 된다. 이것은 임명직 고위공직자가 되려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 중에 정치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주 많아 우리 현대사에 비극적 사태가 벌어졌다. 이 글에서 예를 든 몇몇 사람들은 진작 정치에서 손을 뗐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본인도, 주변사람들도, 시민들도 괴로움을 당한다.

끝으로 바라건대, 아래 도표를 보고 자신이 정치에 적합한 사람인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후기)

내가 평생 연구하고 가르치고 실무에서 활용했던 역량진단모형, 즉 〈성취예측모형〉을 지난 몇 년 간 <사람숲협동조합>이 주최하는 Sunday School(주일학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해왔다. 이 내용은 현재 편집 중이며 늦어도 금년 상반기 중에는 단행본으로 출간될 것이다.

아래 도표는 〈성취예측모형〉에 따라 서울시장 후보들의 역량을 진단한 것이다. 학문적 진단결과이므로 아무쪼록 페친 여러분의 인재선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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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우호

페이스북 2021. 1. 23. 22:55

 

**********민주당 출신 바이든 정부가 오히려 공화적이 아니가? **********

트럼프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면서도 공화적(共和的)인 정치를 하지 않았다. 반며네 민주당 출신의 바이든 정부는 공화적(共和的) 구성을 보이고 있다. 남녀공화, 인종공화, 지역공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이 정부가 어떻게 정치를 잘 할 것인지 못할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트럼프처럼 미국우선 제국주의, 배타주의, 이기주의, 국수주의, 미국우선주의같은 짓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그야말로 인종 전시장 같이 다민족 국가이고 다종교 국가이다. 어느 한 민족, 어느 ㅎ만 위하는 정치는 결코 공화적(共和的)인 정치가 아니다. 백인우월주의 같은 사고를 가진 자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서 지으신 사람이면 동등과 공평이 이루어지는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백인우월주의 같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정도의 강대국이면 강대국의로 의무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국제적인 의무에도 솔선수범해야 한다. 지금까지 트럼프가 하는 생동을 보면 범사에 이기적이고 미국우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이든 정부가 어떻게 달라지게 될 것인지 아직은 속단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각의 구성원들이나 백악관 참모들의 면면을 보아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공화적(共和的)인 인상을 느낄 수가 있다.

공화정(共和政)의 기본정신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정치이기 때문에 억지로 통합을 하려는 생각은 내려 놓아야 한다. 만약 나와 다른 사람의 사상을 다 통제하려고 하거나 억압하고 탄압하는 정치는 북한과 같이 전체주의이지 결코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화정(共和政)도 아니다.

공화정(共和政)은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공화(共和)를 이루어 가는 정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우파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땅에서 좌파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의 몸에서 왼쪽 팔과 왼쪽 다리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자기들의 심장이 왼쪽에 붙어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졸속한 사람들이 소위 우파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 수가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미국은 그렇다손 치고 문제는 우리 한국에서 소위 우파라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여러가지 가짜뉴스와 거짓 말과 거짓 선동과 악의적인 비방과 욕설과 막말등은 차마 들어 줄 수가 없는 소리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한 민국의 헌법에 "대한 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을 그냥 모양으로 걸어 놓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소위 우파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우파가 되는 것이 애국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파적이고 애국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거짓 말을 해도 괜찮고 아무리 욕설과 독설과 막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전광훈이나 주옥순 같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거의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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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충경

페이스북 2021. 1. 23. 22:52

[중도에 대하여]

선거시즌이 되면 가장 많이 들리는 것 중 하나는 ‘중도’라는 단어이다. 정치에 한 발이라도 담근 정치 전문가는 물론이고 교수 등 학자 그리고 언론 종업원들도 몇마디씩 한다.

중도층 또는 무당파의 향방, 중도층 마음을 잡기 위한 전략 등이라는 방송과 글들로 도배를 한다. 그들은 한결 같이 공통점이 있다. 중도층은 아무 특성이나 색깔도 없는 회색지대 또는 진보보수를 왔다 갔다하는 줏대 없는 집단으로 보고 있다.

다 틀렸다.

졸저, ‘핀란드에서 찾은 우리의 미래’는 모두 일곱 개 챕터로 되어 있는데 제 5장에 이에 대해 적은 바 있다. 에버럿 로저스 (Everett Rodgers)의 혁신확산이론과, 벤처경영의 바이블이라고 할 만한 조프리 무어 (Goffery Moore)의 캐즘이론 (Chasm theory)을 진보보수 그리고 중도라는 정치구조와 대입하여 풀어 보았다.

굳이 경영에 관심 없더라도 얼리 어답터 (early adapter)와 죽음의 계곡 (death valley)이란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혁신이론은 정규분포곡선을 다섯으로 나누고, 가장 왼쪽에 신제품 또는 신기술에 가장 적극적인 1)혁신가, 그다음 왼쪽에 2)얼리 어답터 그리고 죽음의 협곡이라는 캐즘을 건너면 주류시장을 만나는데 먼저 3)전기다수인 실용주의자, 꼭지점을 지나면 4)후기다수인 표준주의자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는 5)지각수용자가 있다.

정치구도는 이와 너무 닮았다. 가장 왼쪽 혁신가는 극좌에 해당하는 좌파와 닮았는데 이들은 실현가능성과 위험도를 따지지 않고 변화 그 자체에만 집착한다.

다음의 얼리어답터는 온건개혁파로 진보적 사상을 주류시장에 진입 가능하도록 디자인하고 죽음의 계곡인 캐즘을 넘어야 하는 선각자들이며 실천가들이다. 그리고 가장 오른편의 지각수용자는 새로운 것은 무조건 거부하는 극우들이다.

그렇다면 오늘 글 주인공인 "중도"는 누구인가? 좌우이념 또는 보수진보에 왔다 갔다 하는 박쥐나 회색분자들이 절대 아니다.

그들, 중도층은 전체의 68.2%를 차지하고, 주류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전기후기 다수의 총합이다. 그들은 회색이 아니라 왼편의 전기다수는 ‘실용’, 오른쪽 후기다수는 ‘표준’이라는 분명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전기다수 즉, 실용적 전기다수는 엄격하다. 얼리 어뎁터라는 그룹이 신기술로 완성된 제품을 보여주어도 실용성을 인정 못 받으면 캐즘이라는 죽음의 계곡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아무리 그럴 듯해 보이는 개혁 정책이라도 실용적이지 못하면 기각당하고 사장당한다. 전기다수에 의해 실용적임을 검증되면 꼭지점을 넘어가 후기다수에 의해 표준이 되고 주류시장 전체에서 자리 잡는 즉, 국가표준으로 뿌리내리는 것이다.

정치도 똑 같다. 지난 참여정부 때 한누리당 등이 시도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역풍을 맞고 쫄딱 망했던 것은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는다는 ‘표준’을 건들었기 때문이고, 박근혜가 탄핵 당했던 것은 어린 학생들 죽음을 방관했던 세월호와 최순실의 등장으로 대통령의 기본자질이라는 ‘표준’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가끔 진보 쪽 인사가 가장 오른쪽의 지각수용자에게 추파를 보내는 일이 있다. 캐즘이론은 분명히 말한다. 신제품을 주류시장에 진입시키지 못하고 지각수용자에게 먼저 팔겠다고 내미는 일은 백프로 실패하는 바보짓이니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지각수용자는 주류시장의 실용과 표준으로 채택이 되어도 받아드릴까 말까하는, 새로운 것은 일단 거부하는 집단이니 당연하다.

최근 이낙연 총리의 사면 발언이 역풍을 맞았다고 하는데 역풍이 아니다. 지각수용자에게 손을 내밀었던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기 때문이다.

180석 의석의 정부여당 현주소는 어디일까? 분명한 것은 간신히 캐즘을 넘고 - 그것도 상대편에서 스스로 표준을 망가뜨렸던 행운이 따랐기 때문에 – 현재 전기다수에 걸쳐 있지만 표준 즉, 후기다수까지 단 한 발이라도 넘어가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주식시장을 보면 된다. 새로운 기술로 막 상장한 기업이 하나 있다고 하자. 보유한 기술과 신제품 한 둘로 주류시장 입성에 성공했고 이는 미래가치와 함께 주가에 반영이 되어있다.

그런데 그들이 두 번째, 세 번째 후속 제품을 보여주지 못하고 기업의 실용적 성과와 미래를 못 보여주고 향후 표준으로 자리 잡지 못할 것 같으면 바로 시장에서 밀려나고 최악의 경우 퇴출될 것이다. 핵심은 현재 시장 시가 즉, 그들에게 어울리는 미래가치를 현실에서 실현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

촛불혁명으로 나라다운 나라 그리고 정의를 세우고 온갖 부조리가 제거되는 개혁에 대한 기대가 현재 주가에 반영되어 있는데 이것이 현실에서 반영되지 못하면 주가는 폭락할 것이고 시장에서 밀려날 것이다.

답은 여기에 있다. 기대수익을 이뤄내느냐 마느냐는 즉, 국민이 염원해 온 개혁을 이루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 저쪽 건너 지각수용자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실용성을 입증받고 표준으로 자리 잡아야 할 때이다.

끝으로 핀란드 이야기를 덧붙인다.

‘복지’는 진보세력, ‘성장’은 보수진영을 상징하는 이념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핀란드는 다르다. ‘복지’와 ‘성장’ 둘 다 모두 이미 주류시장인 중도층이 받아드렸다. 다시 말해 복지와 성장 모두 ‘실용’과 ‘표준’으로 입증되어 국가전체의 기반으로 뿌리내려 있다.

핀란드에서는 '복지'가 좌파의 전용물이 아닌 것처럼 '성장' 역시 우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느 정파도 복지 또는 성장을 독점하지 않는다. 핀란드의 복지와 성장은 주류시장 즉, 중도의 책임이며 권리가 되어 있고 그래서 세계 행복지수 3년 연속 1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끝.

[바이든의 미국과 대한민국]

"주주 자본주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훨씬 지났다. 기업이 책임져야 할 유일한 책임은 주주들에게 있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웃음거리이다. 그들은 노동자와 지역사회, 국가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새롭고 급진적인 개념이 아니다."

위의 말을 누가 했을까? 만일 한국의 정치가가 이런 말을 했다면 급진좌파라고 맹공을 받았을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 (Shareholders Capitalism)는 우리 사회의 핵심인데 이를 끝내야 한다는 것은 빨갱이들이라면서, 언론사 종업원들도 거품을 물었을 것이고.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앞 둔 조 바이든이 지난 7월 9일 한 유세장에서 한 말이다. 민주당내 좌파라고 일컫는 샌더슨도 아니고 엘리자베스 웨런도 아니다.

내 졸저 '핀란드에서 찾은 우리의 미래'에서도 썻지만 기업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온갖 문명의 생산품과 표준들 90%가 기업이 만들어 낸 것이다. 기업은 자본주의세계의 핵심이며 주체이다.

그런데 바이든 당선자가 말했듯이 기업은 이제 주주 뿐만 아니라, 노동자,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을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 Klaus Schwab (클라우스 슈와브)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Stakeholders Capitalism)이라고 주창하며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며칠전 조 바이든 당선자는 1조9000억달러(약 2000조원) 규모의 코로나19 대응안을 발표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적자재정을 이유로 반대했던 것을 180도로 뒤집고 '미국 구조 계획'이라는 이름의 미국 의회에 제안한 첫 번째 안이다.

한국 언론사 종업원들은 경기부양 어쩌고 하는데 틀렸다. 위의 바이든 말을 인용하면 진실이 아니고 절대적인 웃음거리다 (That's simply not true. It's an absolute farce.). 이는 기업 지원 등의 경기부양이 절대 아니다. "구조 (Rescue) 계획" 즉, 말 그대로 물에 빠졌거나 불길에 휩싸인 수많은 생명들을 살리기 위한 구조 대책이다.

바이든의 2000조에는 9월말로 6개월 연장된 월 170만원 정도의 실업수당,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중저소득 가구의 임대료 지원에 27조원, 이달 말 종료될 예정인 세입자 퇴거 중단 조처도 9월30일까지로 연장했고 별개로 17조 규모의 소상공인에게 직원 급여보호프로그램 그리고 10만명의 공중보건 인력 고용 등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의 기재부를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은 무엇하고 있는가? 언제까지 균형재정, 재정적자 등 철지난 가락만 읊어가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인가? 아니 이제는 햇빛도 싫어져서 그 우물마저 두껑을 닫아버렸는가?

미국에만 실업자, 중저소득가구, 세입자와 소상공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실업자, 중저소득가구, 세입자들이 있고 벼랑 끝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제발 좀 정신차리자.

언론 종업원들은 할 말 없으면 입닥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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