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죽는연습을 하자.

수필 2011.07.17 12:01

최근에 장묘에 일하시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사망을 하신 분을 이야기하는데 100명중에 한명은 떠날때 웃으며 떠나고 ,십여명은  평화롭게 떠나며 구십명은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죽는다고 한다.
더 재미있는것은 죽은자의  자손들이 대부분이 그 부모와 같이 똑같이 생활방식을 취한다는점이다.
우리의 대부분 사람들은 한마디로 인생을 몸부림치다가 살다가 몸부림치다 죽는 인생이 전체부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온 반 평생을 큰 고통없이 살아왔으나 미래에는 알수 없다.
곰곰히 생각컨데 한 명이  웃으며 떠난 사람의 생활방식을 생각 해봤다.
어떻게 살아오고 어떻게 삶을 정리 했길래 떠나면서 웃는 여유마져 가질수 있을까?
만일에 현실적으로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이라는 것을 가진자라면 웃으며 떠날수 있을까?
노다.이런 사람은 절대로 죽음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것 같다.
그러면  어떤분이 모든것을 내려 놓을수 있을까? 거지일까?아니면 도사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는 범부의 삶을 살면서 비범한 삶을 산사람들이 게중에 가끔은 눈을 띠는것을 본다.
모든것이 없다하여 배웠다하여 모든것을 깨달은냥 사기치는 자는 얼마든지 볼 수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였다.
매일 매일 마음과 욕심을 죽이는 자가 실제로 죽음마져도 쉽게 받아 들일수 있기 때문에 웃으면서 죽음을 받아들일것 같다.
반은 희망연습이라면 나머지 반은 죽음연습 즉 버리는 연습이다.
죽음연습을 하지 않은 사람들 예컨데 욕심의 노예로 전락되어 산 사람은 마지막 최종전 죽음앞에 가장 치열하게 죽음을 거부할 사람일것 같다.
인간은 자신의 비자유성,비존재성 때문에 일정한 한계내에서 내가 존재할때에만 진정으로 존재의 여유를 가질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존재의 비밀 출생과 죽음은 인간이 자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자력의 한계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능력이 많다보면 앞에서 언급 하였듯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여 무한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이럴대 인간은 죽음연습은 커녕 자신이 출생과 죽음을 마음대로할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죽음은 우리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한 것이고 받아들이는 작업인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이길것 같은 세상의 유혹에 자신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린 일생동안은 아니더라도 인생은 떠날때쯤이면 적어도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인생은 무궁무진 할것같은 착각에 빠질지라도 빨리 원상태로 돌아와야 한다.
죽음은 작게는 욕심과 그리고 살아야할 모든것마져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그리고 나를 알고 있는 모든것을.....
매일 매일 죽음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죽음은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라.
지금 버릴것마져 갖고 있는 우리 인생이 아니런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운다는것은 물질과 욕심 그리고 존재와 비존재마져 인정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자 일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개인적으로 욕심은 더 많을것으로 생각된다.
이게 삶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아니런가?
처음 빈것으로 왔다가 너무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힘들텐데도 그래도 채우려는 인간군상이 죽음앞에 죽지 않으려고 저항하려는 자와 무엇이 다르다 할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내부적으로 결함이 많은자가 더욱 더 외부적인 것을 더 많이 채우게 될것이다.
세상적으로 잘나간 사람들 그대들은 죽음앞에서 보면 전혀다른 삶을 산사람들 아닌가?
진정으로 용감한 내적으로 강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어도 풍족하고 세상적으로 가진것 없어도 나눌줄 아는 사람이다.
내일 죽을 사람이 오직 쌓아두기 위하여 더러운 삶을 경주하고 있다.
이제 나를 버리고 죽음연습을 하자.
떠날때 웃음으로 떠날것인가 아니면 살기위하여 몸부림치며 하나도 갖고 가지도 못하면서 헛된 몸짓으로 외부적인것을 키울것인가는 당신결정에 달렸다.
그것은 여러분의 몫이다.훌륭한 결정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