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다.

카테고리 없음 2020. 11. 14. 22:50

 

노래가 어두운 근심을 덜러준다. 

술과 여자와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어리석은 자로 남는다.

승리로 유명해지기보다 노래로 유명해지는 것을 더 좋아한다.

노래가 나라에서 인기있는 것은 덕이 별로 인기 없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자기 불행에 마법을 건다.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은 노래로 부른다.

그림과 데생의 관계는 노래와 말의 관계와 같다.

얻기 어려운 것 세 가지,시적 재능과 너르러움과 괴꼬리 같은 목소리

Edward Lee

페이스북 2020. 11. 14. 22:32

민변∙참여연대도 결국 기득권?

문 정부 들어 수구화 현상 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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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성향 참여연대 "반(反) 인권적ㆍ반헌법적"

한동훈 "자기편 권력비리 수사에 대한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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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성향이라 불리는 민변과 참여연대의 추미애 비토는 시대정신인 개혁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이자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기득권의 추미애 죽이기에 동조하는 꼴이다. 그럴수록 시민 집단지성의 확장성은 더 강고해질 뿐이다. 아무리 망나니들이 조폭처럼 휘젓고 다녀도 인생이 그렇듯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느려도 반드시 새벽이 오듯 순리는 거역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바로 '시대정신', 곧 수 천만 시민 집단지성의 연대와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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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과 참여연대가 언제부터 검찰의 하수인이 되었나? 민변이나 참여연대 식으로 헌법을 해석하자면 압수수색도 거부할 권리가 있어야 옳다. 또한 압수수색을 정당하게 집행했다면, 그 압수수색 물인 전화기에 대한 비번 역시 당연히 풀어야 옳지 않은가? 그래서 서구에서는 이를 거부할 시 징역형에 처한다. 비번을 풀지 않는다면 압수수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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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자면 끝이 없다. 헌법 역시 시대상이나 상식에 기반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동훈, 이 자는 매우 간악한 자로 가히 악마다. 이 자가 주장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참으로 가소로운 말이다. 그들이 지난해 정경심 교수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기소할 당시 무죄추정 원칙은 고사하고 '피의사실 공표'라는 범죄행위는 물론, 범죄자로 낙인찍기 위해 언론에 흘려 이슈화하고 여론 재판을 유도한 자들이 아닌가? 이로 인해 국론이 크게 분열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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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들이 "자기편 권력비리 수사에 대한 보복"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개가 웃을 일이다. 역으로 자기들이 하는 반역을 위한 모사와 항명, 집단행동은 모두 옳고, 정당한 절차에 의한 국가 법집행은 부당하다는 얘긴가? 어찌 세상이 이 모양인가? 초등학생들마저도 판단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마저도 이렇게 억지를 쓰면 된다는 발상 자체가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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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선택적 수사를 하고 선택적 정의 운운하며 국정을 농단, 국민을 조롱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무려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이런 악마적 집단을 청산하지 않으면 무엇을 개혁하고 사회를 바로 세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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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과 참여연대는 검찰과 사법부, 언론의 행태가 옳다고 믿나? 시민사회가 펄펄 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적폐들처럼 손으로 하늘을 가릴 참인가? 과유불급, 즉 지나치면 죽음을 부를 뿐이다. 검찰은 지금 그들 스스로가 악마를 자처하고 있다. 민변과 참연연대, 어디 할 일이 없어서 한동훈 같은 사특한 자를 비호하고 반란을 획책하는 망나니 검찰을 두둔하는가? 아니면 당신들 역시도 수구 기득권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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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5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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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의 역사를 바꾼 문재인 정부

신문 2020. 11. 14. 22:10

 지금은 격려와 존중의 시간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치열하다. 이제 감염은 팬데믹이 되었고 상황은 세계대전의 수준이 되고 말았다.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기 전에 이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여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협력과 연대라는 사실에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합의하고 있다.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고 ‘전후’의 복구를 위해서도 협력과 연대는 필수적이다. 협력과 연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해결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협력과 연대의 원천은 무엇보다도 ‘공동체적 자기애’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본래적 애정과 지지를 의미하는 공동체적 자기애는 서로에 대한 ‘인정’(認定)에서 출발한다. 인정은 공존을 낳고 공존은 협력과 연대로 나아간다.  

우리는 국난의 위기를 맞을 때면 어김없이 우리 안에 내장된 협력과 연대의 유전자가 살아나 분열의 일상을 밀어낸 역사를 가졌다.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우리는 다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에 대한 ‘공동체적 자기애’를 복원시켰다. 다시 협력과 연대의 유전자가 깨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유전자는 정부로 하여금 민주주의적 질서 위에서 방역과 치료의 콘트롤타워로서의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객관성과 공정성은 내팽겨 친 채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서로를 물어뜯는 것이 일상이 된 분열의 시대에 코로나19와의 우울한 전쟁이 놀랍게도 공동체적 자기애를 살려냈다. 또 그것은 방역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앞세운 정부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세계가 우리 정부의 대응방식을 주목하고 배우려 한다.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정부의 능력을 세계가 거울이 되어 비춰준 것이다. 

정부의 능력은 시민의 힘에서 나온다. 이 엄중한 국난의 위기에 비로소 확인된 문재인 정부의 유능이야말로 우리시민 자신의 모습이다.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드러난 문재인 정부의 유능함은 정파적 능력이 아니라 연대와 협력을 이루어낸 국민의 힘이다. ‘우리가 진천’이고 ‘우리가 대구’이듯이 우리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시민의 힘으로 우뚝 선 문재인 정부가 시민의 힘을 가장 돋보이게 했다. 전쟁은 길어지고 전흔은 깊어질 듯하다. 이 힘겨운 국난극복의 시작은 우리 정부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기애다. 우리 ‘시민’과 우리 ‘정부’와 우리 ‘나라’의 자존감을 우리 스스로 높여야 할 때다. 서로를 격려하고 존중할 시간이다.

◆ 총·균·쇠의 역사를 다시 쓰다 

코로나19의 국난까지 문재인 정부는 다른 어떤 정부도 겪지 못한 세 번째 국난을 겪고 있다. 세 번의 국난은 어떤 나라도 예측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불확실성의 효과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지구적 불확실성이 만들어낸 세 번의 국난을 넘기며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놀라운 국가능력을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제1의 국난은 2017년 9월의 ‘북핵대란’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성공하자 한반도에 핵위기는 엄중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다자주의 대화 및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력을 요청했다. 유엔은 157개국이라는 역대 최대 회원국 공동제안으로 ‘올림픽 휴전’을 결의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승인된 후 한국, 북한, 미국의 지도자가 한자리에 모인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세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3년 연속 유엔총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핵위기의 긴장이 평창올림픽과 절묘하게 결합되어 기적처럼 만들어진 평화였다.

문재인 정부 제 2의 국난은 2019년 7월에 시작된 일본과의 ‘통상대란’이다. 일본은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규제에 이어 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느닷없이 발표했다. 세계적으로는 자유무역질서를 뒤흔드는 무도한 짓이었고 우리에게는 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비쳤다. 미국의 관망 속에 갈등은 악화되고 장기화되었다. 우리는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등 강력한 대응책을 추진하는 한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카드를 꺼내들기도 했다.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선언하고, 국회는 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켰다. 불확실성이 남아 있으나 한일 통상대란은 우리에게 소부장산업의 해외의존도를 낮추고 경쟁력을 갖추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신속하고도 적극적인 대응과정에서 이제 ‘일본에게는 밀리지 않을 수 있다’라는 자존감을 덤으로 얻었다.

문재인 정부 제 3의 국난은 현재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대란’이다. 이제 코로나19는 팬데믹이 되어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한국은 2월 29일을 정점으로 일일 확진자 수가 줄고 있다. 관리 가능한 수준을 조심스럽게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약 한 달간의 국가감염관리시스템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신천지 신도 집단감염과 함께 폭증하는 확진사태가 온 국민을 불안과 공포로 몰았으나 방역과 검역의 시스템은 흔들리지 않았다. 발달된 IT기술을 활용한 진단검사와 철저한 역학조사, 중증도에 맞는 치료체제의 구축에 세계가 주목했다. 압도적인 진단역량과 속도에 세계가 놀랐다.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시민과 함께 하는 독특한 방역시스템이 세계의 모델이 되고 있다. 바이러스대란을 관리하는 정부의 능력에 우리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핵란, 통상란, 균란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의 삼대 국난극복은 총·균·쇠의 역사를 바꾸는 더 크고 놀라운 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인류의 운명을 바꾼 세 가지 요소로 무기와 병균과 금속을 지목했다. 168명의 스페인 군인이 8만 명의 잉카주민을 정복한 예처럼 유라시아가 긴 제국주의시대를 주도한 과정을 유럽의 환경에서 만들어진 총·균·쇠의 역사로 풀어낸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정복과 지배의 패러다임으로 20세기 강대국의 힘을 설명하는데도 여전히 유효했다. 

문재인 정부에 들이닥친 삼대국난은 다른 무엇보다도 ‘21세기형’ 총·균·쇠의 급습이었다. 핵무기로 변형된 ‘총란’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부품, 장비로 모습을 바꾼 ‘쇠란’, 그리고  코로나 19로 등장한 ‘균란’은 21세기형 총·균·쇠였다. 20세기까지의 총·균·쇠는 강대국 중심의 세계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침략과 점령의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우리시대 총·균·쇠의 습격은 예측하지 못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것이었고, 초연결사회에서 지구적 파국을 가져올 수 있는 지구적 현상이 되었다. 핵으로 바뀐 총란은 지구적 공존을 위협하고, 신소재로 바뀐 쇠란은 지구통상질서를 위협했으며, 코로나19로 바뀐 균란은 지구적으로 생명을 위협했다. 21세기형 총·균·쇠의 위협은 더 거대하고 더 치명적이며 더 두려운 것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총·균·쇠의 지구적 위협을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극복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파괴의 무기였던 ‘총’이 평창올림픽이라는 평화의 제전으로 극복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쇠’는 거대한 자본과 강대국의 일방주의에 위축되지 않는 호혜주의의 비전을 제시했다. ‘균’이야말로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내몰려 봉쇄와 단절을 택하기보다 외부로부터의 문을 닫지 않으면서도 시민사회와의 협력에 기초한 민주적 보건방역시스템으로 극복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총·균·쇠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정복과 파괴의 총·균·쇠를 넘어 상호 호혜 속에서 인류 전체가 진보할 수 있는 새로운 출구를 열고 있다. 거대한 불확실성 앞에 세계가 갈 방향을 문재인 정부가 가리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이 불확실성 시대에 지구적 이정표가 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과 약소국들에게는 희망이 되고 있다. 

◆ 시민의 힘이 유능한 정부를 만든다

지구적 초연결사회에서 국가 간의 상대적 능력은 실시간으로 확인된다. 자국 내에서 자기 정부의 능력에 대한 평가와 평판은 당파적 편견으로 가득 차 있지만 국가 간의 역량을 보이는 객관적 지표는 비교적 뚜렷이 드러나 있다. 삼대 국난을 극복해내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능력은 대한민국의 자존감을 한껏 높이고 있다. K-pop과 영화 ‘기생충’의 쾌거에 이어 이제 정부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총·균·쇠의 역사를 바꾼 문재인 정부의 유능함은 다른 무엇보다도 시민의 힘에서 나온다. 시민의 힘이 곧 국가의 능력이다. 2017년 약 1천 7백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박근혜대통령을 탄핵했고 새정부를 출범시켰다. 일제에 저항한 시민, 독재에 저항한 저 4월의 시민, 부마의 시민, 5월 광주의 시민, 6월의 시민이 촛불로 모여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열망을 내뿜었고 그 선택이 문재인 정부였다. 그래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는 어떤 정부보다 시민의 뜻에 민감하다. 다른 어떤 정부보다 시민을 두려워해서, 시민에게 듣고 시민에게 배우며 시민 속에서 시민과 함께 하고자 한다. 그래서 다른 어떤 정부보다 시민에게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빠르게 응답할 준비를 갖춘 정부다. 시민의 힘이 삼대국난을 극복한 국가능력인 이유다.  

문재인 정부의 삼란은 지구적 불확실성의 효과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대란’은 현대 세계의 모범으로 여겨졌던 서구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모든 질서를 의심케 하고 있다. 나는 이 지구적 혼돈과 위기에 대응해 총·균·쇠의 역사를 다시 쓰는 대한민국의 능력이 ‘K-디마크라시’(K-democracy)의 힘이라고 감히 말하고자한다. 주권자가 관객으로 전락한 서구의 대의민주주의, 위임민주주의의 경직성과 수동성은 우리시대의 위기에 무력하다. K-디마크라시는 시민의 참여와 영향력이 극대화된 ‘적극적 민주주의’이며 시민의 삶과 결합된 ‘유연한 공공성’의 질서다. K-디마크라시의 본질은 촛불에 응축되어 있고 촛불은 대한민국 국민이 독특하게 품고 있는 ‘공동체적 자기애’의 상징이다. 나아가 K-디마크라시가 응축하고 있는 공동체적 자기애는 ‘지구적 인류애’로 열려있다. ‘우리가 진천’이고 ‘우리가 대구’고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적 자기애의 확장은 ‘우리가 지구’라는 인류애를 향해 있는 것이다.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도 세계문화에 공헌할 기회를 잃은 슬픔을 표현한 3·1 독립선언문의 정신도 바로 이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공동체적 자기애를 뿌리로 하는 K-디마크라시는 시민적 자율의 민주주의이자, 사회적 책임의 민주주의이고, 공동체적 협력의 민주주의다. 시민의 힘과 정부의 능력이 이러한 민주주의를 유지, 발전시킨다. ‘K-디마크라시’야말로 우리 시대 예측 불가능한 위기를 해결하는 최적의 모델이자 처방일지도 모른다. 정부를 격려할 때다. 정부가 우리고 우리가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