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와 존재

2020. 9. 18. 23:05

 

부재자는 상속자가 되지 못하리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해가 저물때 비로서 사람들은 그 위대함을 안다.

존재는 망각의 힘을 지닌 여신이다.

수도승 한 명을 위해서라도 수도원장을 만든다.

자기 결혼식이라도 불참하면 좋은 몫을 가지지 못한다.

자리에 없는 자들은 혀로 살해를 당한다.

바람에 촛불은 꺼지나 횃불은 더욱 피어나듯이 부재로 작은 열정은 

줄어드나 큰 열정은 커진다.

부재는 가장 큰 악이다.

부재자들은 늘 틀렸다.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칭찬에는 아첨이 없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자리를 비운 사람은 자리를 잃는다.

사냥하러 간 사람은 자리를 잃는다.

지금 여기에 없는 사람은 날마다 멀어진다.

눈이 평가받고 싶다면 죽거나 여행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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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왜 ‘시신이송’ 장면을 마주해야 하는가

신문 2020. 9. 18. 16:27

9월 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신이송 장면을 방송한 KBS‧TV조선‧채널A‧MBN‧YTN에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는 법정제재와 행정지도로 나뉘는데, 행정지도는 심의규정 등의 위반정도가 경미하여 제재조치를 명할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행정지도는 방송사에 어떤 법적 불이익도 주지 않는다.

 

2018년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신이송 장면을 사용한 방송에 행정지도를 결정한 게 벌써 세 번째다. 시신이송 장면 방송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지만 단 한 차례도 법정제재를 내리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솜방망이 징계를 되풀이하는 사이 방송사들은 개선의 노력은커녕 ‘죽음’의 길조차 상품화하는 보도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운구‧응급차 중계보도 금지 없다’ 행정지도

2018년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고 노회찬 의원 시신 이송을 생중계했다. TV조선은 시신을 이송 중인 차량을 따라가며 생중계했고, 운구차량을 확대해 보여주는 등 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당시 TV조선은 시민들의 큰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에 행정지도 의견제시를 의결했다. 심지어 TV조선과 마찬가지로 시신이송 차량을 생중계한 연합뉴스TV <뉴스13>에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이런 비상식적인 심의 과정 및 결과에는 심의위원들의 몰지각함이 있다. 당시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심영섭 심의위원은 “심의규정에 운구‧응급차 중계보도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며 행정지도를 주장했다. 결국 심 위원의 주장에 전광삼, 박상수 심의위원까지 동조하며 다수결로 행정지도 의견제시가 의결됐다. 심 위원 주장대로 시신이송 장면 관련한 기준이 방송심의 규정에 없어서 제재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 품위유지 5호는 방송에서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TV조선, 연합뉴스TV 등의 시신이송 장면 방송은 시청자에게 충격을 주고, 불쾌감을 유발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해당 조항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심영섭 심의위원은 ‘관련 조항이 없다’는 핑계로 솜방망이 처분을 이끌었다.

 

2019년, ‘초유 상황’ 이유로 두 번째 행정지도

2018년 고 노회찬 의원 시신이송 생중계 방송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회의 납득할 수 없는 심의는 2019년 지상파 3사인 KBS, MBC, SBS를 비롯해 MBN, YTN의 문재인 대통령 모친 시신운구 방송으로 이어졌다. 현직 대통령의 모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지상파 3사와 YTN은 시신운구 장면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MBN은 다음날 아침 뉴스에서 같은 문제를 반복했다. 고 노회찬 의원 시신이송 생중계와 마찬가지로 시신운구 영상 방영에 시민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하지만 이때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제대로 된 심의를 하지 않았다. ‘초유의 일이었다’, ‘방송 직전에 해당 영상이 들어왔다’ 등의 이유를 댄 방송사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까지 했다. 김재영 심의위원은 “이런 일 자체가 초유의 상황이라 언론사도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방송사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기도 했다.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9년에도 시신운구 장면을 그대로 사용한 방송사들에게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했다. 유사한 문제가 2018년에 이어 반복됐지만, 방송사들의 재발 방지를 위한 엄정한 제재는커녕 또다시 ‘봐주기’ 심의로 넘어가버렸다.

 

 

2020년, ‘과거 유사사례’ 이유로 세 번째 행정지도

2020년에도 문제는 반복됐다. 7월 10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하자 KBS, TV조선, 채널A, MBN, YTN은 시신이 이송되는 장면을 또다시 방송에 사용했다. 언론의 계속되는 이러한 행태에 시민들의 비판이 다시 쏟아졌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방송에서 같은 문제가 세 번씩이나 반복되어 일어났는데도 어김없이 행정지도 권고를 결정했다.

 

이번엔 방송사의 입장을 듣는 의견진술조차 거치지 않았다. 방송심의소위원회는 9월 16일 회의에서 2018년 고 노회찬 의원 시신이송 생중계, 2019년 문재인 대통령 모친 시신운구 장면 방송 등의 사례를 들어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앞선 두 차례 심의가 ‘엉터리’로 진행됐다는 점을 간과한 채 ‘과거에 유사한 사례를 행정지도로 의결했으니 권고로 하자’고 나선 것이다.

 

심의위원들은 이번 심의에서도 제27조 품위유지 등 기타 조항을 검토하지 않았다. 같은 문제가 세 번째 반복됐지만 이를 엄중하게 문제 삼는 심의위원은 없었다. 물론 허미숙 방송심의소위원회 소위원장은 “의도를 가지고 이 장면을 내보낸 것 같다”며 문제를 지적했다. 이소영 심의위원도 “필요하지 않은 장면을 관행적으로 쓴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일부 심의위원이 지적한 이런 문제는 방송사만의 책임일까. 앞서 2018년과 2019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과정 및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방송사들이 ‘의도가 담긴 듯한, 불필요한 시신이송 장면을 관행적으로 쓰는’ 배경에는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행정지도를 반복해 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문제를 일으켜도 제대로 된 제재를 받지 않으니 방송사들이 똑같은 문제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9월 11일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언제까지 면피성 징계만 내릴 것인가’ 논평을 통해 방송심의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프로그램에 행정지도를 남발하며 형식적 대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무책임을 지적한 바 있다. 반복된 시신이송 장면 방송 문제도 형식적 징계로 어물쩍 지나칠 사안이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의 공공성·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업무와 함께 방송의 공적 책임 준수 여부에 대한 심의 및 제재 등을 총괄하는 기구이다. 그러나 국민이 위임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으로서 존립의 의미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보여온 안일한 태도를 각성하지 않는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언론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0년 9월 1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조선·중앙·동아·문화·국민, ‘광화문집회 광고’ 국민에게 사죄하라

신문 2020. 9. 18. 16:24

조선·중앙·동아·문화·국민, ‘광화문집회 광고’ 국민에게 사죄하라

방역위기 초래한 반공익적 신문광고, 엄중한 심의 촉구한다

 

코로나19 재확산 과정에서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해 대규모 인원이 모인 8월 15일 광화문집회가 전국 집단감염 과정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집회 전부터 사랑제일교회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자 광화문집회가 방역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15회), 중앙일보(10회), 동아일보(11회), 문화일보(5회), 국민일보(1회)는 집회 전날까지 관련 광고를 지면에 실었고,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총 42회 게재했다.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36회에 걸쳐 광고를 실었으며 조선일보는 15회로 가장 많이 게재했다. 결국 5개 신문사의 대대적인 광고 게재는 언론이 광화문집회 주최 측의 확성기 역할을 하며 방역 위기를 초래하는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신문사는 광화문집회 광고를 반복해서 실은 것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는 8월 20일 △ 정부가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고 검사대상을 무작위로 늘려서 확진자 수를 늘리고 있다 △무증상인 사람들한테까지 검사를 받게 한다 △확진자 수 말고 확진비율을 공개하라 등 허위사실이 담긴 사랑제일교회 입장문을 전면광고로 실었다. 광화문집회 광고 게재에 대한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태다. 코로나19 사태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재난 상황에서 일방적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과 검증 없이 허위사실이 포함된 광고를 싣는 것은 언론으로서 매우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더해 ‘조중동’ 3개 신문사는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집회를 통해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자 그 책임이 정부에게 있다는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조선일보는 19일 <“코로나 재유행, 명백한 정부 책임…이제라도 잘못 인정해야”>, <교회 소모임 금지 푼 바로 다음날, 교회 집단감염> 등의 보도에서 정부 정책 때문에 재확산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사설/교회 소모임까지 다 풀었던 정부 조치 적절했나>에서는 “최근 수도권 환자 급증은 교회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역시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다”더니 마지막에는 “막상 환자 폭증이 현실화하자 정부 잘못은 없고 교회 탓이라고 한다”며 교회 소모임 제한 조치를 해제한 정부 정책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수십 차례 지면 광고를 통해 집회 규모가 확대되는데 일조를 넘어 사실상 앞장선 행위에는 입을 다문 채 정부책임론만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신문사들은 광고를 실어준 자신들의 책임부터 인정하고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태도이다.

 

광화문집회 전면광고를 8월 14일 한 차례 실은 바 있는 국민일보는 독자 항의와 노동조합의 지적을 받아들여 앞으로 방역에 지장을 초래하는 광고를 실지 않겠다는 뜻을 노조 측에 전달했다. 광고 게재에 대한 공식사과는 아니더라도 광화문집회 광고 게재가 공익에 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다행이지만, 여기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다. 국민일보뿐 아니라 광화문집회 관련 광고를 실은 신문사들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언론은 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정확한 정보 전달과 사실 보도로 국민의 불필요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방역체계를 철저하게 검증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신문사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방역에 악영향을 끼치는 광고를 서슴없이 실었다. 공익에 반하는 신문사의 이런 무책임한 행위는 우리 사회에서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8월 26일, 이들 5개 신문사의 광복절 집회 광고를 신문광고윤리강령 및 신문광고윤리실천요강 위반으로 신문윤리위원회에 독자불만처리 접수하였다. 또한 광고자율심의규정 위반으로 광고자율심의기구에 인쇄매체광고 심의 민원을 접수하였다. 신문광고윤리강령은 신문광고가 △독자에게 이익을 주고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신문의 품위를 손상해선 안 되고 △관계법규에 어긋나서는 안 되며 △과대한 표현으로 현혹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광고자율심의규정 제1조도 광고윤리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신문윤리위원회와 광고자율심의기구는 국민의 생명 및 안전을 위협하는 반사회적, 반공익적 광고가 다시는 신문 지면에 등장하지 못하도록 해당 강령, 규정에 부합하는 엄중한 심의를 통해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20년 8월 2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