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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주는 행복

사람들은 받는것에 익숙해져 있다.

사랑도 모두 받고 싶어 안달이다.

모두가 수동적인 삶에 길들여져 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보지 못한다.

사랑을 통하여 사람을 발견하고,사랑을 통하여 외연을 확장하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고 모든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나에 전부를 투자하여 얻기를 바라는 마음은 긴장과 불신과 경쟁이 늘 따라 다니다.

자신의 일보다 타인을 위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강하고 강한지 잘 모른다.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나외에 또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나를 더 크고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는 행복은 나에 에너지에 타인의 에너지를 합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주는것은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고 더 오래갈 수 있다.

예컨데 선물은 받는것보다 주는것이 더 행복하다.

받는 사람은 받는 순간에 기쁨이 다가 오지만, 주는 사람은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더 행복하다.

사람들은 사랑을 희생이라 말하지만 즐겁고 행복한 희생을 한번 경험해 보는것도 괜찮은 시간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동적인 삶을 살고 탐욕에만 전부를 거는이유는 무엇일까?

이기심과 본능의 삶에 적극적인 삶으로 변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내부 컴플렉스를 외부로 만회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어쩌면 주는것보다 받음으로 나를 위안하고 나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까?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은 근복적인 본질은 타인에게 관심을 일생동안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을 찾는것이 나를 찾는것이 아니냐고 말하지만,

이면에는 무관심으로 버려진 나를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 있는것이다.

세상을 쫓는것도 결국은 나를 드러내어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구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하지 않는 사람은 끝없는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유도하고 집착하는것이

이러한 이유일것이다.

세상도 결국은 무관심에 대한 관심의 촉구로 보아야 한다.

주는 행복은 타인에 관심을 끌기위함이 아니라 내 자체가 관심의 주체가 되고 즐겁고

행복함을 말하는 것이다.

살고있는  모든 동물은 사랑속에서 살기를 바라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생명있는 존재들이 주는 행복보다 존재에 대한 갈망이 사랑보다 더 커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존재에 대한 욕구가 먼저냐 아니면 사랑이 먼저냐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욕구는 살고자 하는 본능에 몸부림이다.

결국 나를 버리지 못하고 나에 집착하게 되는것이다.

나에 집착은 모두에게 불행이되고 고통이 되는것이다.

사랑 그 자체는 그것으로 모든것을 얻는것과 같다.

주는 행복은 그 행동하는 순간에 모든것을 얻는것과 같다.

존재에 대한 몸부림은 살아 남을때 그때만 행복이 될 수밖에 없는것이다.

순간에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과정에 행복을 구할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행복을 원한다면 순간에 행복보다 과정에 행복을 추구하라.

사랑은 그 과정속에서 모든것을 얻고 행복해질수 있는것이다.

선물만 받고 순간에 기쁨만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가?

이기심과 탐욕에 사는것은 순간에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과 같다.

아니면 선물을 준비하며 행복과 기쁨속에서 나를 던질것인가?

그대는 선물을 주기위해 그렇게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